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feat. 데이빗 인솔자)
송출1위/남미여행
작성자
김영봉
작성일
2024-01-28 23:23
조회
1798
광주에서 밤차를 타고 새벽에 인천공항에 내리니 남도 땅 추위와는 다른 매서운 기운이 몸을 감쌌다. 공항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을 보니, 이제 남미 여행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는 가벼운 흥분이 동반되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남미의 처음 기착지는 페루이다. 페루에서 인상 깊었던 곳은 와카치나 사막과 마추픽추이다. 와카치나 사막을 가기 위해 리마에서 황량한 사막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몇 시간을 가야 했다. 도착한 와카치나 사막의 버기카 투어는 상상 이상으로 온 몸을 뒤집어 놓았다. 버기카는 곡예비행을 하듯 회전하면서 탑승객을 들었다 놓았다 하였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면서 즐거워했다.
그리고 샌드보딩을 타고 수직 절벽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짜릿함과 흥분을 느끼는 것도 잠시, 샌드보드에 실린 몸은 어느새 한참 낮은 저지대에 도착해 있었다. 이 나이에 이런 걸 해볼 수 있다니, 참 고맙고 행복했다.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야 했다. 기차를 타고 가는 순간 안데스 산맥의 고산 준령들이 차창가를 스치며 지나갔다. 한국의 산하와는 판이하게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다. 그때 문득 고등학교 시절, 기억 속의 풍경이 소환되었다. 친구들과 완행열차를 타고 가면서 기타 치는 친구의 반주에 맞추어 흥겹게 노래를 불렀는데, 홍안의 소년은 이제 70객의 백발이 되어 아내와 손잡고 안데스 산 속으로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
이 험한 산속의 돌들을 가지고 이렇게 높은 곳에 건물을 지었던 잉카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종교적인 열정이 이런 대단한 건축물을 완성했을까? 마추픽추는 대단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사진으로 영상으로 이미 익숙해서 그런지 나에게 전해진 감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다음은 볼리비아이다. 볼리비아에는 우유니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자 열망하는 우유니 소금 사막. 처음 보는 느낌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그 막막함을 뭘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때 떠오른 것은 김광균의 시를 그림으로 그렸던 김환기 화백의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푸르른 화폭이다. 묘하게 김환기의 푸르른 화폭과 우유니의 하얀 소금 바다가 대비되면서 광막한 우주에 내가 한 점으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내 지나온 세월이 오버랩되면서 괜시리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나와 같이 광막한 바닷길에 함께 서 있는 아내가 고마웠다.
다음 날은 랜드크루져로 알티플라노 고원지대를 달렸다. 4,000m 고원의 사막은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인도의 라다크를 여행했던 후배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황량함을 보려고 라다크를 간다고, 나도 역시 황량함을 보려고 이 땅을 지나고 있구나.
그 황량함 속에서도 물이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생명이 있었다. 비록 먼지 풀풀 나는 고단한 고원의 사막이었지만 나에겐 깊은 인상을 심어 준 곳이었다. 그러고 보면 볼리비아는 황량함, 막막함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땅을 지나면서 사람들은 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는가 보다.
칠레에서는 피츠로이 트래킹을 했다. 한국에서 평소에 아내와 자주 산행을 했는데, 여기는 해발고도가 높아 산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눈앞에 펼쳐진 피치로이 풍광은 그것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모레노 빙하와 세상 끝 우체국이 기억에 남는다. 빙하는 난생 처음 보았다. 지구는 한때 저런 얼음덩어리로 덮여 있었다는데, 빙하를 보면서 남미 여행은 대단함의 연속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 끝 우체국, 해남 땅끝마을, 포루트갈을 여행하며 갔던 유럽대륙의 서쪽 끝 까보 다 로까곶, 사람들은 끝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언가 새로움을 꿈꾸는 것 같다. 나도 세상의 끝 우체통에 사랑하는 가족들의 소망을 넣어 보냈다.
다섯 번째 방문국 브라질. 단연 이과수폭포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을 이과수폭포로 인해 장대하게 장식했다.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는 그냥 맛보기였다. 브라질 쪽의 이과수는 정말 장관이었다. 특히나 보트를 타고 거대한 폭포수 물이 쏟아지는 이과수 악마의 목구멍에 접근하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짜릿한 흥분의 연속이었다. 우리 일행들은 쏟아지는 폭포물을 뒤집어 쓰면서도 기분좋은 함성을 지르면서 계속해서 “ONE MORE TIME”을 외쳐대었다.
나중에 브라질 현지 가이드에게 들으니 무려 12번을 악마의 목구멍 쪽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는 것이다. 보트에 탔던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폭포물을 온몸에 맞으면서도 기분좋게 깔깔대며 웃어젖쳤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흥분된 감정이 가슴을 쏴하게 폭포수가 되어 울린다. 내 일생에 그렇게 많이 소리를 질러보기는 처음이었다.
다음 날은 크리스토발 언덕의 예수상과 빵산을 보러 갔다. 예수상은 크기도 크지만 문외한이 보기에도 조각이 잘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예수상 주변과 빵산에서 바라본 일망무제의 조망은 한폭의 그림이란 표현 이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행을 마치면서 함께 했던 모든 일행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누구 하나 싫은 내색 없이 서로 도와주고, 양보하고 응원해주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았고, 그랬기에 여행 내내 모두들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던 같다.
또한 이현철 팀장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어쩌면 그렇게 싫은 내색도 없이 사람들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대하고 일일이 챙겨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진정 프로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 기간 동안 설사로 내내 고생했고, 고산에 적응하느라 몸이 고달프기는 했지만 앞으로 사는 동안 이번 여행은 내내 좋은 기억과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남미의 처음 기착지는 페루이다. 페루에서 인상 깊었던 곳은 와카치나 사막과 마추픽추이다. 와카치나 사막을 가기 위해 리마에서 황량한 사막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몇 시간을 가야 했다. 도착한 와카치나 사막의 버기카 투어는 상상 이상으로 온 몸을 뒤집어 놓았다. 버기카는 곡예비행을 하듯 회전하면서 탑승객을 들었다 놓았다 하였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면서 즐거워했다.
그리고 샌드보딩을 타고 수직 절벽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짜릿함과 흥분을 느끼는 것도 잠시, 샌드보드에 실린 몸은 어느새 한참 낮은 저지대에 도착해 있었다. 이 나이에 이런 걸 해볼 수 있다니, 참 고맙고 행복했다.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야 했다. 기차를 타고 가는 순간 안데스 산맥의 고산 준령들이 차창가를 스치며 지나갔다. 한국의 산하와는 판이하게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다. 그때 문득 고등학교 시절, 기억 속의 풍경이 소환되었다. 친구들과 완행열차를 타고 가면서 기타 치는 친구의 반주에 맞추어 흥겹게 노래를 불렀는데, 홍안의 소년은 이제 70객의 백발이 되어 아내와 손잡고 안데스 산 속으로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
이 험한 산속의 돌들을 가지고 이렇게 높은 곳에 건물을 지었던 잉카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종교적인 열정이 이런 대단한 건축물을 완성했을까? 마추픽추는 대단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사진으로 영상으로 이미 익숙해서 그런지 나에게 전해진 감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다음은 볼리비아이다. 볼리비아에는 우유니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자 열망하는 우유니 소금 사막. 처음 보는 느낌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그 막막함을 뭘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때 떠오른 것은 김광균의 시를 그림으로 그렸던 김환기 화백의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푸르른 화폭이다. 묘하게 김환기의 푸르른 화폭과 우유니의 하얀 소금 바다가 대비되면서 광막한 우주에 내가 한 점으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내 지나온 세월이 오버랩되면서 괜시리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나와 같이 광막한 바닷길에 함께 서 있는 아내가 고마웠다.
다음 날은 랜드크루져로 알티플라노 고원지대를 달렸다. 4,000m 고원의 사막은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인도의 라다크를 여행했던 후배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황량함을 보려고 라다크를 간다고, 나도 역시 황량함을 보려고 이 땅을 지나고 있구나.
그 황량함 속에서도 물이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생명이 있었다. 비록 먼지 풀풀 나는 고단한 고원의 사막이었지만 나에겐 깊은 인상을 심어 준 곳이었다. 그러고 보면 볼리비아는 황량함, 막막함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땅을 지나면서 사람들은 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는가 보다.
칠레에서는 피츠로이 트래킹을 했다. 한국에서 평소에 아내와 자주 산행을 했는데, 여기는 해발고도가 높아 산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눈앞에 펼쳐진 피치로이 풍광은 그것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모레노 빙하와 세상 끝 우체국이 기억에 남는다. 빙하는 난생 처음 보았다. 지구는 한때 저런 얼음덩어리로 덮여 있었다는데, 빙하를 보면서 남미 여행은 대단함의 연속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 끝 우체국, 해남 땅끝마을, 포루트갈을 여행하며 갔던 유럽대륙의 서쪽 끝 까보 다 로까곶, 사람들은 끝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언가 새로움을 꿈꾸는 것 같다. 나도 세상의 끝 우체통에 사랑하는 가족들의 소망을 넣어 보냈다.
다섯 번째 방문국 브라질. 단연 이과수폭포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을 이과수폭포로 인해 장대하게 장식했다.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는 그냥 맛보기였다. 브라질 쪽의 이과수는 정말 장관이었다. 특히나 보트를 타고 거대한 폭포수 물이 쏟아지는 이과수 악마의 목구멍에 접근하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짜릿한 흥분의 연속이었다. 우리 일행들은 쏟아지는 폭포물을 뒤집어 쓰면서도 기분좋은 함성을 지르면서 계속해서 “ONE MORE TIME”을 외쳐대었다.
나중에 브라질 현지 가이드에게 들으니 무려 12번을 악마의 목구멍 쪽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는 것이다. 보트에 탔던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폭포물을 온몸에 맞으면서도 기분좋게 깔깔대며 웃어젖쳤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흥분된 감정이 가슴을 쏴하게 폭포수가 되어 울린다. 내 일생에 그렇게 많이 소리를 질러보기는 처음이었다.
다음 날은 크리스토발 언덕의 예수상과 빵산을 보러 갔다. 예수상은 크기도 크지만 문외한이 보기에도 조각이 잘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예수상 주변과 빵산에서 바라본 일망무제의 조망은 한폭의 그림이란 표현 이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행을 마치면서 함께 했던 모든 일행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누구 하나 싫은 내색 없이 서로 도와주고, 양보하고 응원해주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았고, 그랬기에 여행 내내 모두들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던 같다.
또한 이현철 팀장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어쩌면 그렇게 싫은 내색도 없이 사람들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대하고 일일이 챙겨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진정 프로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 기간 동안 설사로 내내 고생했고, 고산에 적응하느라 몸이 고달프기는 했지만 앞으로 사는 동안 이번 여행은 내내 좋은 기억과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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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영봉 선생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지나온 인생과 김환기 화백의 화폭을 떠오르게 하는 뜻깊은 여행이 된 것 같아 저희도 기쁩니다.
이번 남미 여행이 선생님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늘 남아 있기를 소망하며
다음 여행길에도 뵙기를 바랍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