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여행에 보내는 감사
송출1위/남미여행
작성자
윤국진
작성일
2024-02-02 07:27
조회
2335
이 후기를 쓰기 시작한 시간이 새벽 세시입니다. 아직도 밤낮이 흐릿하고 잠은 낮에 더 간절합니다.
길고 먼 여행이었습니다. 길도 멀었고 기간도 길었습니다. 땅도 하늘도 물도 바람도 다 낮선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낯설었습니다. 그 낯선 것들이 준 긴장이 풀어지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애초 남미를 함께 가자고 의기 투합했던 것은 다섯 동기 부부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길에는 세 부부만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비를 모으는 중에 건강이 나빠진 친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흔히 남미 여행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선 건강해야 하고, 그만한 시간도 낼 수 있어야 하고, 적지 않은 여행비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 세 가지를 허락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행에 따라나설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함께한 분들은 모두 스물 여섯 분이었습니다. 이 분들을 처음 다같이뵈었던 곳이 어디였던지 기억이 선명하지 않습니다. 인천공항 어디였던 것도 같고 LA공항 열결편 터미널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눈 것은 페루 리마의 호텔라운지였던 것으로 생각이 납니다. 말이 인사지 각 동행 중에 한 사람씩 나서서 짤막하게 나눴던 상견이라 서로 알기에는 좀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는듯 모르는 듯 우리는 동행을 시작 했습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길동무의 끈을 붙들고 여행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여정은 그런 동행들을 그저 두지 않았습니다. 쏟아지는 햇빛, 도시나 교외를 구분하지 않고 떠 있는 부연 모래먼지, 발자국마다 숨을 턱에 받치는 고산환경,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우리를 노린다던 소매치기, 짧은 시간 명작을 남기고 싶어 서로에게 건네던 카메라, 수퍼마켓과 식당을 찾던 낯선 길 위에서 동행들은 느리지 않게 친구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방을 뒤져 상비약을 나누고, 지도를 펴들고 앞장 서고, 짧은 영어로 물건값 치루는 것을 돕고, 서로 가지고 있던 여행 정보를 나누고, 버스 안에서 비장의 간식들을 건네면서 서로가 보살피고 기대고 하면서 여행을 했던 것입니다. 그 따뜻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후기를 쓰러 들어오면서, 우리 일행들이 올린 후기들을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글이야 그렇다고 하고, 얼굴을 알게 올려주신 사진, 실루엣만 보이는 사진, 풍경만 남은 사진 어떤 사진에서도 함께한 분들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의 임자 뿐만 아니라 함께 했던 모든 분들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거기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분들이 그립습니다.
살면서 남미라는 곳은 그렇게 유쾌한 인상은 아니었습니다. 음습한 키워드들이 먼저 떠오르는 세상이기 쉬웠습니다. 직접 가서 본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어보지 않아도 가난하고 고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식민과 제국주의의 그늘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도시 곳곳에 자리잡은 유럽식 건물들, 간판마다 걸린 로마철자, 서양사람과 잉카의 얼굴이 묘하게 섞여 보이는 사람들 얼굴, 교도소보다 높고 뾰족한 민가의 철장, 빈곤을 웅변하는 달동네 판잣집들을 보면서 유럽의 약탈자들이 미웠습니다. 그냥 두었더라면 세상 낙원이었을 거라는 생각은 순진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감자와 옥수수를 기르고, 강과 숲과 바다에서 먹고 입을 것을 지천으로 얻을 수 있었던 그들에게 문명은 아무래도 재앙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을 다듬어 성을 쌓고, 바위산에 밭을 만들고, 신전을 쌓아 제사를 지내던 곳을 지나면서 거기 살던 사람들이 저절로 존경스러웠습니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땅에 도시를 만들고, 사막에 그림을 그리면서 신을 경배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 본 남미라는 곳은, 알던대로 그 땅의 사람들을 도륙하고 약탈했던, 바로 그 사람들을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동상을 만들어 도시 한가운데 세운 부조리의 땅이었습니다. 그 땅을 지나면서 오천년인지 오만년인지 이 땅을 지켜온 우리에게 감사했습니다. 우리말로 말하고, 우리 이름으로 서로 부르고, 우리를 침략했던 사람들을 공부하고, 비슷한 얼굴끼리 결혼하고, 비슷비슷한 집들이 이웃할 수 있는 우리가 한없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땅에 살았던 분들께 감사하고, 지금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분들께 감사했습니다.
돈과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좋았습니다. 갔던 곳, 보았던 곳, 경험했던 일, 맛보았던 음식 모두 새롭고 즐거웠습니다. 태평양의 찬물 위를 불어온 바람에 패러글라이딩을 하던 라르코마르해변과 연인의 공원, 오카치나의 모래언덕과 오아시스 마을의 석양, 울렁이던 멀미 속에서도 선명하기만 했던 나스카의 원숭이, 3800미터 안데스 위에 세워진 쿠스코의 붉은 기와지붕 마을, 거기서 먹었던 된장찌개와 비빔밥, 아르마스 광장을 내려다 보며 마셧던 스타벅스 커피, 고산증을 처음 겪어보았던 우루밤바의 정원, 우리 시골 역사의 정서가 가득했던 아구아깔리엔데스 역사, 비내리는 하늘이 보이던 페루레일,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간직한 오얀따이 땀보, 잉카의 농업기술센터 모라이와 성스러운 계곡, 산비탈의 소금염전 모라이, 잉카의 거석 유적 삭사이와망, 태극기가 걸려있던 라파즈 달의 계곡, 도시철도의 역할을 하던 케이블카와 4095미터의 낄리전망대, 갖고 싶었던 남미 악기를 살 수 있었던 마녀시장, 한나절을 달려서 갔던 티와나쿠 유적과 티티카카호수, 물과 바람과 별과 소금이 오묘한 조화를 이뤘던 우유니 사막, 4000미터 고원지대 황무지 사이사이 흐르던 소금기 가득했던 파스텔톤의 호수 라구나 꼴로라다, 그 위를 꿈같이 군무하던 플라멩고, 이 아름다운 호수가 이제 몇 년이 지나고 나면 말라버릴 것이라던 현지 가이드 스테파니의 설명에 절망했던 우리의 지구의 환경, 차를 달리고 30분을 걸어서 만났던 비밀의 호수, 그곳에서 만났던 라마 토끼 비꾸냐 여우 그리고 그곳 사람들, 유난히 까탈스럽게 굴던 칠레 국경 검문소, 마치 일본처럼 단정했던 깔리마와 산티아고, 살짝 바가지요금을 청구하던 비냐델마르의 해물스프가 맛있던 식당, 태평양의 보석이라는 발파라이소 골목길, 시골 버스 정류장보다도 작아보이던 푸에르토 나탈레스 공항, 넉넉한 현지 아저씨의 추천으로 만났던 식당 피카다 데 까를리토스, 거기서 맛봤던 육즙 팡팡했던 파타고니아 스테이크, 흐린 하늘이 아쉬웠던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 사람을 날려버릴 듯 사나운 바람이 불던 쿠에노스 전망대와 살토그란데 폭포, 그리고 국경을 넘고 황무지 도로를 여섯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칼라파테, 그 곳 스테이크 집 Don pichon에서 아내와 망연히 바라보던 낙조, 그리고 이곳 파타고니아가 아니면 볼 수 없을 듯했던 피츠로이산과 토레노 빙하, 거기서 즐겼던 트래킹과 크루즈,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내려갔던 지구의 끝 우수아이아, 도착하자마자 탐식한 킹크랩과 해물구이, 에스프레소가 기막혔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카페, 바람 때문에 허락되지 않았던 비글해협 여행, 세상의 끝 국립공원과 남극의 물이 일렁거리던 세상의 끝 우체국, 그리고 오줌 냄새가 진동하던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포르투 이과수와 압도적 풍광의 이과수 폭포, 브라질 리오의 코파카바나 해변과 30분을 기차로 올라갔던 크리스토발 언덕의 예수상, 아이들 슬리퍼를 샀던 빵지아수까르(빵산)와 마지막 오찬이었던 슈하스코 뷔페의 점심식사, 거기서 맛본 살짝 구운 스테이크의 맛이라니... . 이 여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 합니다. 무시로 쏟아지는 졸음, 사진첩 회사에 보낼 사진들을 고르는 일, 여행 중에 끊임 없이 염려하고 응원해주셨던 분들과의 한 끼 식사... 이 모든 것이 아직도 남아있는 여행의 즐거운 여운입니다. 이런 행복한 여정을 아프지 않고 온전히 행복하게 마친 아내와 나 스스로와, 이 여행을 계획하고 관리해주고 동행했던 두 친구 부부에게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감사 또한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 여행을 돕고 이끌어주신 분께 감사합니다. 특히 우리의 인솔자 Kevin Lee님께 감사드립니다. Kevin의 유창한 영어와 스페인어는 우리들 여행의 가장 큰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가 있어서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타는 것, 자는 것, 먹는 것 그리고 우리의 안전 모두를 포함해서입니다. 우리의 여행이 온전한 패키지가 아니어서 그의 도움은 더욱 필요하고 요긴했습니다. 곳곳에서 해 준 그의 여행 안내 또한 훌륭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경험했던 군생활과 전공 지식과 풍부한 독서에서 나오는 역사와 사회와 기술에 대한 안목은 우리의 여행을 더없이 풍요롭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Kevin은 한국적인 감성과 미국적 합리주의가 잘 어우러진 분이었습니다. 공항 짐찾는 곳이나 버스 하차 할 때 보여준 헌신적인 봉사 정신은 마치 이웃집 청년인 듯 다정했습니다. 여행 중에 일어나는 자잘한 일들을 친절하게 도와주면서도 그게 인솔자의 본분이라면서 감사에 손사래치던 모습에서 여지없는 프로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2-3년 후에 우리가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할 것이고, 그 때 우리의 인솔자가 되어줄 수 있겠는지를 물었습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약속과 그의 약속이 함께 이루어 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우리 여행을 도와준 Jordan과 Stephany의 조국애 가득했던 안내와 여행지 해설, 칼라파테와 우수아이아에서 우리 여행을 안내해주시면서 깨알같은 여행정보를 제공해주신 두 분 젊은 교포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여행을 도와주신 유학생, 마지막 일정을 함께 했던 리오의 신사 마리오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마리오님의 고국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여행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두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윤국진 선생님 간만에 인사드립니다 🙂
선생님께서 느낀 소중한 추억과 감정들 한자 한자 정성담아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어렵고 힘든 일정이었지만, 누구보다 멋진 어른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주신 모습을 보며
저 역시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
이제는 서로가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삶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만,
저희 서로 약속한대로 조만간 또 다른 지구 반대편인 아프리카에서 다시 뵐 날을 고대하며 인사올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윤국진 선생님의 후기를 읽다보니 흐릿해진 기억 속의 여행여정이 다시 그대로 눈 앞에 재현되는듯 하네요. 훌륭한 후기에 감사합니다.
황선생님. 안녕하시지요?
이곳은 어제가 입춘이었습니다.
이제 봄날이네요.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소리 없이 내리는 걸 보니 봄비가 맞네요.
이 봄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