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야, 남미여행 어땠냐구? 따봉이지! (feat. 데이빗 인솔자)
남미
작성자
신연주
작성일
2024-01-28 09:31
조회
2227
꼬박 20여 시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페루의 리마에 도착하였다. 낮에는 아르마스 광장을 둘러보고 리마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거인족 한 쌍을 만났다. 팔 다리가 유난히 길어서 거리행위예술가인 줄만 알았는데 페루의 이까에는 실제 2미터에 가까운 거인들이 살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걸리버처럼 소인국에 사는 느낌일까?
거리에 가로등이 들어오자 화려한 미라폴로레스 거리를 지나 태평양을 마주할 수 있는 라르코마르 해변으로 갔다.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끼고 있는 레스토랑은 연인들, 친구들, 가족들로 붐비며 행복한 미소가 넘쳐났다. 해는 저물고 절벽 아래로 출렁이는 바다와 끝없이 일렁이는 불빛에 내 마음도 설레었다. 문어 세비체에 피스코사워믹스 한 잔을 곁들이니 몸은 문어처럼 얼굴은 칵테일처럼 발갛게 물들었다.
“세뇨리따!”
거나하게 취해 기분좋게 길을 걷고 있는데, 뚱뚱한 치마를 걸쳐 입은 페루 아줌마가 세뇨리따를 외치며 계속 따라온다. 한국에서는 나를 보고 할머니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는 세뇨리따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세뇨리따는 아가씨라는 뜻이라네. 다만 몇 솔이라도 쥐어주고 와야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도로는 젖어 있었고 습도 탓인지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구불거렸다. 아름다운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로 향하였다. 4시간을 걸쳐 가는 내내 버스 창밖으로 지루하게 이어지는 황량한 사막은 스르르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와 겹쳐졌다. 뜨거운 태양과 모래먼지를 막으려고 하얀 헝겊의 터번을 휘날리며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는 장면은 내내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드디어 와카치나에 도착하였다. 푹푹 빠지는 발걸음에도 ‘이게 바로 사막이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갈지자로 등성이를 올라챘다. 낙타 대신 버기카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으아악!”
버기카는 사막의 굽이진 능선을 따라 곡예를 펼쳤다.
“더 빨리?” “응, 더 빨리!”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속도감과 뒤집어질 듯한 코너링에 환호하였다. 가장 높은 모래 절벽에 도착하였다. 와, 이런 수직 절벽에서 샌드보딩을 한다고? 두려움을 안고 아스라이 절벽 밑으로 미끄러지는 남편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외쳤다.
“사랑해, 김. 영. 봉.”
주책맞게 왜 이러지? 하지만 나는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여기까지 함께 와 줘서 고맙다고! 사막을 붉게 물들인 낙조를 바라보며 나는 더없이 행복하였다. 그리고 가슴 속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 참 잘 걸어 왔다. 너랑 나랑 많이도 싸웠지만.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고산증세가 시작됐다. 걱정스런 마음에 미리미리 예방약을 먹어 둔 탓인지 나는 멀쩡했다. 오얀따이땀보에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안데스의 깎아지른 산봉우리와 파란 하늘에 걸쳐 있는 구름은 자유롭고 선명하여 방긋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덜컹덜컹 1시간 30분 동안 소풍 나온 학생처럼 즐겁기만 한데 어느새 기차는 아구아깔리엔떼스에 도착하였다. 산등성이에서 콸콸 흘러내려온 물줄기 위로 무지개 같은 다리가 걸쳐져 있는 아름다운 마을,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내려서 마추픽추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따갑게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젊은 산 와이너 픽추에서 늙은 산 마추픽추를 바라보며 2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200톤이 넘는 거석들을 끄집어 와 피라미드를 만들고, 주거지와 계단식 밭을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다. 자연도 위대하지만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힘을 합칠 줄 아는 인간도 지혜롭다는 생각을 하였다.
리마를 출발하여 라파즈의 달의 계곡으로 이동하였다. 점토로 이루어진 뾰족뾰족한 지형이 달의 표면과 같다고 하여 달의 계곡이라 명명하였다한다. 계곡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서 볼리비아 원주민 복장을 한 남자가 팬플룻으로 엘콘도르파사를 애절하게 불고 있다.
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나는 달팽이가 되기보다는 참새가 되고 싶어.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나도 그럴 거야. 내가 할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거야. 욕망도 탐욕도 성냄도 미움도 후회도 원망도 지위도 권세도 모두 벗어버리고 콘도르처럼 훨훨 날아다닐 거야.’
지금까지는 예행연습이라고 해 두자. 볼리비아 라파즈에서 우유니로 이동하였다. 집어삼킬 듯한 뜨거운 햇빛과 안데스 고원에서 부는 먼지바람과 장을 괴롭히는 끈질긴 설사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해발 고도 4000미터에 육박하는 우유니 사막에 당도하였다. 도대체 말이 나오질 않는다. 이럴 수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바다, 애초에 바다였던 것이 이렇게 높은 산맥에 갇혀 억겁의 세월을 견디어 오다니. 애가 다 타버린 후 가슴 속 결석이 하나하나 피어올라 이렇게 거대한 소금사리가 되었다니. 찬란한 슬픔에 압도되어 나는 남편과 함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춤을 춘다. 그래, 나도 맘이 많이 아팠었지.
이제는 알티플라노 고원이다. 가도가도 끝없는 비포장도로와 진흙 길로 랜드크루져는 이리저리 날뛰기 일쑤다. 창문 틈으로 쏟아지는 흙먼지와 뜨거운 사막의 지열은 몸도 마음도 지치게 한다. 얼마나 가다 보면 라마가 모여 풀을 뜯기도 하고 플라맹고가 무리지어 무심히 먹이를 찾고 있다. 몸집이 날씬하고 황갈색을 띤 동물은 뭐냐고 물었더니 비쿠냐란다. 어서 칠레로 넘어가고 싶다.
후니쿨라를 타고 발파라이소로 올라갔다. 쇠락한 옛 항구도시이지만 칠레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머물렀던 저택이 있다. 칠레의 독재에 항거해 민중화가들이 모여 벽화를 통해 민중을 설득하면서부터 벽화마을이 탄생했다고 한다. 마을의 좁은 길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담벼락에는 온갖 대형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한 바퀴 다 돌아도 심심하지가 않다. 선이 굵고 원색적이라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금방 알 것 같고 어디서 찍어도 작품 사진이 나올 만하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는 식당에서 구글번역기를 이용해 음식을 주문하였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인솔자 데이빗의 반복되는 스페인어 강좌로 간단한 음식주문이나 인사 정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번역기를 들이대어 메뉴판을 읽으니 신기하게 한글로 번역을 해 주었다. 랍스타를 주문하면서 “세뇨리따, 뽀까 쌀 뽀르퐈보르, 그라시아스” 라고 하니 여자 종업원이 활짝 웃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구글맵을 이용해 슈퍼를 찾아서 체리, 사과, 포도를 샀다. 호텔마틴구신데를 검색하니 알아서 안내를 해 주었다. 이참에 구글을 이용해 자유여행을 한 번 해 봐?
여행이 막바지로 향해 간다. 칠레에서 아르헨티나 쪽의 파타고니아로 들어갔다. 파타고니아는 거인의 발이라는 뜻인데 눈 덮인 피츠로이 산 뿐 아니라 모레노 빙하 가까이에서 60미터 얼음덩어리가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산행을 즐기는 우리 부부는 파타고니아 티셔츠, 바람막이점퍼를 애용한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등산복 브랜드이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파타고니아 지명을 가져다 썼으니 우리는 언제부턴가 파타고니아를 동경하게 되었다.
아,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에서는 마음으로 쓰는 편지를 노란 우체통에 넣어 두고 왔다. 이제는 후회할 일을 덜 만들자. 우리 앞에 남은 생이 얼마 되지 않기에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웃자고, 더 많이 보듬어 주자고. 삐끗하여 서로의 발을 밟을지라도 꾸준히 스텝을 연습하여 아름다운 춤을 춰 보자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에비타가 잠들어 있는 레꼴레타, 엘 아테네오 서점, 대통령궁을 보았다. 그리스 파르테논신전 모양의 기둥이 늘어선 건물이 뭔가 궁금했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이었다. 프란치스코교황이 집전했다는 대성당, 라보까 까미니토 골목길, 거기에서는 짝퉁 주니어스보까클럽 유니폼을 샀다. 손자에게 입혀볼 상상을 하니 흐뭇하였다.
남미여행의 하이라이트, 이과수 폭포! 브라질쪽으로는 흩어진 폭포가 한꺼번에 모여들어 떨어지는 바람에 폭풍같은 물보라가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갔다. 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폭포의 웅장한 자태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하는 보트를 타기 위해 하강기를 타고 이과수강 기슭 쪽으로 내려갔다. 비옷 위로 구명조끼를 입고 모자를 단단히 여미고는 자리에 앉았다.
보트는 강물의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이며 점점 악마의 목구멍 쪽으로 향하였다. 80미터의 높이에서 한꺼번에 떨어지는 폭포에 빨려 들어가면 어쩌지? 걱정도 잠시 양 팔을 벌리고 거침없이 쏟아지는 폭포를 향해 소리 질렀다. 한 번 더! 보트는 소리소리 지르는 우리를 태우고 악마의 목구멍 쪽으로 열 두 번을 들락거렸다. 함께 하다 보니 물따귀를 맞고 또 맞아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잊지 못할 액티비티다. 따봉? 따봉!
호텔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라파인쇼를 관람하러 갔다. 중남미 지역의 민요와 춤을 즐겼다. 민중의 애환이 깃든 춤과 노래, 시는 흥겹기도 구슬프기도 하면서 여행을 마무리 짓게 하였다.
리오데자네이로의 크리스토발 언덕에서 예수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빵산을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탔다. 코파카바나 해변과 도심의 빌딩, 예수상이 대서양과 함께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다. 풍만한 엉덩이를 자부심으로 여기는 브라질 여성, 흥청망청 삼바축제, 오일 대신 에탄올로 자동차를 굴리는 나라, 산꼭대기 빈민촌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고가도로를 놓아 빈민들이 자유로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신경쓰는 룰라 대통령. 아쉽지만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를 끝으로 이만 여행을 접어야겠어요.
여행 내내 서로를 격려하며 즐겁게 함께 한 팀원들과 28일 동안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심하면서도 겸손하게 우리를 챙겨준 데이빗 인솔자님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
그동안 고마웠어요. 오브리가다! 이제는 안녕 차오차오!
거리에 가로등이 들어오자 화려한 미라폴로레스 거리를 지나 태평양을 마주할 수 있는 라르코마르 해변으로 갔다.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끼고 있는 레스토랑은 연인들, 친구들, 가족들로 붐비며 행복한 미소가 넘쳐났다. 해는 저물고 절벽 아래로 출렁이는 바다와 끝없이 일렁이는 불빛에 내 마음도 설레었다. 문어 세비체에 피스코사워믹스 한 잔을 곁들이니 몸은 문어처럼 얼굴은 칵테일처럼 발갛게 물들었다.
“세뇨리따!”
거나하게 취해 기분좋게 길을 걷고 있는데, 뚱뚱한 치마를 걸쳐 입은 페루 아줌마가 세뇨리따를 외치며 계속 따라온다. 한국에서는 나를 보고 할머니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는 세뇨리따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세뇨리따는 아가씨라는 뜻이라네. 다만 몇 솔이라도 쥐어주고 와야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도로는 젖어 있었고 습도 탓인지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구불거렸다. 아름다운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로 향하였다. 4시간을 걸쳐 가는 내내 버스 창밖으로 지루하게 이어지는 황량한 사막은 스르르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와 겹쳐졌다. 뜨거운 태양과 모래먼지를 막으려고 하얀 헝겊의 터번을 휘날리며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는 장면은 내내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드디어 와카치나에 도착하였다. 푹푹 빠지는 발걸음에도 ‘이게 바로 사막이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갈지자로 등성이를 올라챘다. 낙타 대신 버기카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으아악!”
버기카는 사막의 굽이진 능선을 따라 곡예를 펼쳤다.
“더 빨리?” “응, 더 빨리!”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속도감과 뒤집어질 듯한 코너링에 환호하였다. 가장 높은 모래 절벽에 도착하였다. 와, 이런 수직 절벽에서 샌드보딩을 한다고? 두려움을 안고 아스라이 절벽 밑으로 미끄러지는 남편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외쳤다.
“사랑해, 김. 영. 봉.”
주책맞게 왜 이러지? 하지만 나는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여기까지 함께 와 줘서 고맙다고! 사막을 붉게 물들인 낙조를 바라보며 나는 더없이 행복하였다. 그리고 가슴 속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 참 잘 걸어 왔다. 너랑 나랑 많이도 싸웠지만.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고산증세가 시작됐다. 걱정스런 마음에 미리미리 예방약을 먹어 둔 탓인지 나는 멀쩡했다. 오얀따이땀보에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안데스의 깎아지른 산봉우리와 파란 하늘에 걸쳐 있는 구름은 자유롭고 선명하여 방긋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덜컹덜컹 1시간 30분 동안 소풍 나온 학생처럼 즐겁기만 한데 어느새 기차는 아구아깔리엔떼스에 도착하였다. 산등성이에서 콸콸 흘러내려온 물줄기 위로 무지개 같은 다리가 걸쳐져 있는 아름다운 마을,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내려서 마추픽추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따갑게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젊은 산 와이너 픽추에서 늙은 산 마추픽추를 바라보며 2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200톤이 넘는 거석들을 끄집어 와 피라미드를 만들고, 주거지와 계단식 밭을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다. 자연도 위대하지만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힘을 합칠 줄 아는 인간도 지혜롭다는 생각을 하였다.
리마를 출발하여 라파즈의 달의 계곡으로 이동하였다. 점토로 이루어진 뾰족뾰족한 지형이 달의 표면과 같다고 하여 달의 계곡이라 명명하였다한다. 계곡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서 볼리비아 원주민 복장을 한 남자가 팬플룻으로 엘콘도르파사를 애절하게 불고 있다.
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나는 달팽이가 되기보다는 참새가 되고 싶어.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나도 그럴 거야. 내가 할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거야. 욕망도 탐욕도 성냄도 미움도 후회도 원망도 지위도 권세도 모두 벗어버리고 콘도르처럼 훨훨 날아다닐 거야.’
지금까지는 예행연습이라고 해 두자. 볼리비아 라파즈에서 우유니로 이동하였다. 집어삼킬 듯한 뜨거운 햇빛과 안데스 고원에서 부는 먼지바람과 장을 괴롭히는 끈질긴 설사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해발 고도 4000미터에 육박하는 우유니 사막에 당도하였다. 도대체 말이 나오질 않는다. 이럴 수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바다, 애초에 바다였던 것이 이렇게 높은 산맥에 갇혀 억겁의 세월을 견디어 오다니. 애가 다 타버린 후 가슴 속 결석이 하나하나 피어올라 이렇게 거대한 소금사리가 되었다니. 찬란한 슬픔에 압도되어 나는 남편과 함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춤을 춘다. 그래, 나도 맘이 많이 아팠었지.
이제는 알티플라노 고원이다. 가도가도 끝없는 비포장도로와 진흙 길로 랜드크루져는 이리저리 날뛰기 일쑤다. 창문 틈으로 쏟아지는 흙먼지와 뜨거운 사막의 지열은 몸도 마음도 지치게 한다. 얼마나 가다 보면 라마가 모여 풀을 뜯기도 하고 플라맹고가 무리지어 무심히 먹이를 찾고 있다. 몸집이 날씬하고 황갈색을 띤 동물은 뭐냐고 물었더니 비쿠냐란다. 어서 칠레로 넘어가고 싶다.
후니쿨라를 타고 발파라이소로 올라갔다. 쇠락한 옛 항구도시이지만 칠레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머물렀던 저택이 있다. 칠레의 독재에 항거해 민중화가들이 모여 벽화를 통해 민중을 설득하면서부터 벽화마을이 탄생했다고 한다. 마을의 좁은 길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담벼락에는 온갖 대형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한 바퀴 다 돌아도 심심하지가 않다. 선이 굵고 원색적이라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금방 알 것 같고 어디서 찍어도 작품 사진이 나올 만하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는 식당에서 구글번역기를 이용해 음식을 주문하였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인솔자 데이빗의 반복되는 스페인어 강좌로 간단한 음식주문이나 인사 정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번역기를 들이대어 메뉴판을 읽으니 신기하게 한글로 번역을 해 주었다. 랍스타를 주문하면서 “세뇨리따, 뽀까 쌀 뽀르퐈보르, 그라시아스” 라고 하니 여자 종업원이 활짝 웃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구글맵을 이용해 슈퍼를 찾아서 체리, 사과, 포도를 샀다. 호텔마틴구신데를 검색하니 알아서 안내를 해 주었다. 이참에 구글을 이용해 자유여행을 한 번 해 봐?
여행이 막바지로 향해 간다. 칠레에서 아르헨티나 쪽의 파타고니아로 들어갔다. 파타고니아는 거인의 발이라는 뜻인데 눈 덮인 피츠로이 산 뿐 아니라 모레노 빙하 가까이에서 60미터 얼음덩어리가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산행을 즐기는 우리 부부는 파타고니아 티셔츠, 바람막이점퍼를 애용한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등산복 브랜드이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파타고니아 지명을 가져다 썼으니 우리는 언제부턴가 파타고니아를 동경하게 되었다.
아,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에서는 마음으로 쓰는 편지를 노란 우체통에 넣어 두고 왔다. 이제는 후회할 일을 덜 만들자. 우리 앞에 남은 생이 얼마 되지 않기에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웃자고, 더 많이 보듬어 주자고. 삐끗하여 서로의 발을 밟을지라도 꾸준히 스텝을 연습하여 아름다운 춤을 춰 보자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에비타가 잠들어 있는 레꼴레타, 엘 아테네오 서점, 대통령궁을 보았다. 그리스 파르테논신전 모양의 기둥이 늘어선 건물이 뭔가 궁금했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이었다. 프란치스코교황이 집전했다는 대성당, 라보까 까미니토 골목길, 거기에서는 짝퉁 주니어스보까클럽 유니폼을 샀다. 손자에게 입혀볼 상상을 하니 흐뭇하였다.
남미여행의 하이라이트, 이과수 폭포! 브라질쪽으로는 흩어진 폭포가 한꺼번에 모여들어 떨어지는 바람에 폭풍같은 물보라가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갔다. 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폭포의 웅장한 자태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하는 보트를 타기 위해 하강기를 타고 이과수강 기슭 쪽으로 내려갔다. 비옷 위로 구명조끼를 입고 모자를 단단히 여미고는 자리에 앉았다.
보트는 강물의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이며 점점 악마의 목구멍 쪽으로 향하였다. 80미터의 높이에서 한꺼번에 떨어지는 폭포에 빨려 들어가면 어쩌지? 걱정도 잠시 양 팔을 벌리고 거침없이 쏟아지는 폭포를 향해 소리 질렀다. 한 번 더! 보트는 소리소리 지르는 우리를 태우고 악마의 목구멍 쪽으로 열 두 번을 들락거렸다. 함께 하다 보니 물따귀를 맞고 또 맞아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잊지 못할 액티비티다. 따봉? 따봉!
호텔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라파인쇼를 관람하러 갔다. 중남미 지역의 민요와 춤을 즐겼다. 민중의 애환이 깃든 춤과 노래, 시는 흥겹기도 구슬프기도 하면서 여행을 마무리 짓게 하였다.
리오데자네이로의 크리스토발 언덕에서 예수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빵산을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탔다. 코파카바나 해변과 도심의 빌딩, 예수상이 대서양과 함께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다. 풍만한 엉덩이를 자부심으로 여기는 브라질 여성, 흥청망청 삼바축제, 오일 대신 에탄올로 자동차를 굴리는 나라, 산꼭대기 빈민촌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고가도로를 놓아 빈민들이 자유로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신경쓰는 룰라 대통령. 아쉽지만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를 끝으로 이만 여행을 접어야겠어요.
여행 내내 서로를 격려하며 즐겁게 함께 한 팀원들과 28일 동안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심하면서도 겸손하게 우리를 챙겨준 데이빗 인솔자님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
그동안 고마웠어요. 오브리가다! 이제는 안녕 차오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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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연주선생님!
정성스럽게 써주신 후기에서 남미여행내내 행복한 선생님의 얼굴이 보이는것 같습니다.
인생의 특별하고 좋은 기억을 저희 작은별 여행사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여행길에서도 만나길 바라며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