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또 가슴이 뛴다 ! (feat. 데이빗 인솔자)
송출1위/남미여행
작성자
손달호
작성일
2024-01-29 14:21
조회
4119
2023년 12월 23일 LAX공항을 거쳐 페루의 수도 리마의 말도나도 공항에 저녁 9시에 도착하였다. 한국의 살인적인 추위와 너무나 대비되는 따뜻한 날씨이다. 한국에서 3겹을 껴입은 옷들때문에 움직이기 조차도 힘들다. 장장 대략 35시간에 걸친 여행이다. 공항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번잡한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하면서 손님이 더욱 늘어난다. 손님들은 전부 오랜시간의 비행에 지친 얼굴에 자기 짐이 어디 있는지 찾고 있는 눈치다.
옛 잉카제국의 수도 그 유명한 Cuzco(쿠스꼬)까지는 대략 1시간의 비행이다. 비행을 시작하자마자 곧 하강에 들어가 바로 도착한다. 산 중턱에 계속에 자리잡은 이도시는 온통 빨강색 지붕으로 물감을 뿌려놓은 듯하다. 해발 3500m정도이니 비행기가 한바퀴 돌더니 그대로 착륙이다. '쿠스코'란 페루 원주민 말인 Quechua어로 '배꼽'이라는 뜻이다. 태양신을 숭배한 잉카 제국에서 그들의 수도는 세계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Cuzco, ombligo del mundo."(쿠스코, 세계의 중심)
1532년 잉카를 침범한 스페인의 Francisco Pizzarro는 형제간 싸움으로 지친 잉카 왕Atahualpa를 카하마르카로 초청한 후 비무장 병사 2000명을 거느리고 나타난 왕의 측근을 순식간에 총과 기병으로 살육하고 아타왈파를 사로잡는다. 불과 180명의 스페인 병사와 스물 일곱마리의 말에 의해서 400여년에 걸친 잉카의 역사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인터넷을 뒤지면 이 장면을 기술한 피사로 비서의 목격담을 읽을 수 있다.
그 방 가득히 금과 은을 채워 주기로 하고 풀려 난 왕은 약속대로 금을 바치고 기독교로 개종까지 하였으나 피사로는 1533년 7월 16일 아타왈파를 교수형에 처하고 만다. 그 해 11월 쿠스코를 점령한 스페인 군대는 건물마다 가득 차 있는 황금을 약탈, 부피를 줄이느라 녹여서 본국으로 가져갔다. 원형으로 보존된 잉카의 황금을 거의 볼 수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복자는 제국과 함께 그들의 전통과 문화도 말살하고 만 것이다. 그 후 1536년 Manco Inca가 반란을 일으켜 저항을 시도해 보았으나 피사로 군은 칠레 원정에서 돌아온 300기마군의 지원을 받아 이를 평정하였고 1539년 잉카는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많은 군대를 가지고 어떻게 얼마 안 되는 스페인 군을 당해 내지 못하였을까? 총과 기병 등 무기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태양신이 보는 데서 싸워야만 한다고 믿었던 태양의 나라 잉카의 군대는 낮에만 전투를 하였고 전쟁보다 농사가 더 소중했던 군인들은 비가 오면 집으로 돌아가 모내기를 하였다 한다. 어수룩할 정도로 순박한 백성들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500년을 지나지 않은 멀지 않은 옛날의 슬픈 역사 이야기다. 언뜻보는 쿠스코의 집들은 낯익은 한국의 붉은 기와, 벽돌집과 비슷하다.
성벽위에 올라서면 쿠스코의 시가가 내려다보인다. 잉카 사람들의 세계관은 우주를 크게 하늘, 지상, 지하 셋으로 나누고 그 각각을 콘돌, 퓨마, 뱀으로 상징하였다 한다. 지구의 중심인 쿠스코를 퓨마에 비유하면 사크사이와만은 그 머리에 해당되기 때문에 지형적으로 쿠스코의 현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유적 뒤쪽에 있는 커다란 자연석 지하로부터는 쿠스코 중심 대성당 등에 이르는 미로 같은 지하도가 연결돼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6월24일 Inti Raimi, 태양 축제가 열려 잉카 시대의 의식을 재현한다. 이 행사는 브라질 리마의 카니발, 볼리비아의 오르로와 함께 남미의 3대 축제로 알려져 있다.
석벽 전면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다. 관광객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구경에 열중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문득 안데스의 플루트 Quena의 조용한 가락이 흐르기 시작한다. El condor pasa다. "철새는 날아가고" 라는 제목으로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러 유명해진 이 노래는 원래 안데스 사람들에게 영매로서 신성시되는 콘도르에게 당부하는 일종의 진혼곡이다. 1536년 5월, 망코 잉카는 2만의 병력으로 사크사이와만에 진을 치고 최후의 일전을 도모하지만 그 뜻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잉카 재건의 꿈은 바람 부는 이 들판에 이슬처럼 스러지고 만다. 세월은 흘러 460년, 구슬픈 피리 Quena의 곡조는 높아졌다 낮아졌다 돌담 구석구석을 채우며 구천 하늘 멀리 사라져 간다.
꾸스코의 길들은 언덕이 많다. 몇 걸음 걸을 때마다 호흡이 힘들어 쉬게 된다. 그리고 보니 오늘 내내 숨이 가빴다. 이것이 바로 고산증세인 모양이다. 말로만 듣던 고산증세 생각보다 매우 고통스러웠다. 차멀미하는 것 같기도 한데 도무 정신이 몽롱해지고 잠이와서 눈꺼플 무게가 천근만근이나 되는 듯하다. 답답하면 한번씩 심호흡을 해가며 겨우 몇발씩 자리를 움직인다.
예일대학 교수 Hiram Bingham은 1911년 7월 24일, 12세 인디오 소년의 안내를 받아 400년 넘게 잡초에 덮여 잠자고 있던 무인의 폐허를 발견한다. 지금부터 불과 100여 년전의 일이다. 원주민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알려 졌던 곳이라 발견이라는 말은 합당치 않겠으나 여하간 그로 인하여 이 세계 유산이자 페루의 대표적 건축 유적인 마추피추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떠날 때부터 흐린 하늘을 쳐다보며 개어 주기를 몇 번이나 빌어 왔는데 중턱을 올라선다. 주거지 사이를 비집고 돌아 나오니 홀연 안전에 마추피추가 전개된다. 더욱 신비로운 파노라마 앞에서 말할 수 없는 기대감에 심장은 고동치고 감격한 두뇌는 숨 막히는 경외감속으로 잠겨듬을 느낀다.
오후 4시에 출발한 기차는 급할 것이 없다는 듯 지루하게 달린다. 언제부터인가 계곡에는 어둠이 내리고 승객들은 거의 잠이 든다. 버스를 갈아타고 쿠스코로 가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한다. 몇시간이 넘도록 깃들었던 어두운 창밖에 어느 순간 휘영청 밝은 빛이 찾아왔다. 저 밑으로 차차 넓게 퍼져 가면서 시계를 가득히 채우는 한줄기 불. 감격스럽고도 형용할 수 없는 비장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먼 전쟁터에서 고향 어머니 품으로 돌아온 반가움과 그리움이 이런 것일까? 수수께끼만 남아있는 무인의 폐허에서 알지 못할 비애의 역사를 느끼고 온 허전한 가슴에 잉카의 슬픈 운명을 겪어온 그들 후손의 따뜻한 불빛은 원초적 일체감을 안겨 주는 듯하다. 동공으로 들어오는 불 빛 하나 하나가 화살처럼 초점을 찔러온다.
며칠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관광의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는 북미의 나이아가라, 아프리카의 빅토리아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불려지는 이과수를 찾았다. 이과수라는 이름은 원주민인 Guaranies 인디언의 말에서 나온 것인데 Igu는 물, acu는 장대한 것에 대한 경탄의 표시로 'Great Water'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물이 만들어내는 일대 교향시를 감상하게 된다.
아마존에 다음가는 남미 제2의 강 Rio Parana는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국경을 따라 남하한다. 세계 최대의 발전량을 자랑하는 Itaipu 댐을 지난 후 동쪽 Brasil의 Foz do Iguacu와 서쪽 Paraguai의 Ciudad del Este 두 도시 사이를 빠져 나오면 바로 Iguassu 강이 흘러 들어오는 합류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 지점이 바로 Argentina까지 합쳐 3개국의 국경이 맞닿는 곳이다.
처음에 보이던 부분은 이미 시계에서 사라지고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울창한 나무와 무지개를 곁들이며 갈수록 폭을 넓혀간다. 사람들은 전망대에 기대어 엄청난 규모에도 놀라지만 보다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바라본다. 여기야말로 최고의 장관이다 하고 사진을 찍지만 곧 더 좋은 곳이 나타난다. 갈수록 규모는 Escalate되고 물안개는 짙어지며 굉음은 모든 소리를 제압한다.
다음날 리오의 상징이고 우리나라 TV의 광고에 자주 자주나오는 양손을 벌린 예수상이 있는 코르코바도 언덕에 있는 그리스도상을 보러 갔다. "구름이 개여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그게 마음 한쪽에 걸려 있었다. 산봉우리는 올려다 볼 때마다 안개가 엷어졌다 다시 짙어졌다 공연히 마음을 졸이게 한다.
저녁 7시, 브라질과의 작별을 한다. 머리는 멍한데 괜히 기분이 너무 좋다. 브라질... 그 이름만 들어도 한동안 가슴이 뛸 것 같다. 이제, 또 가슴이 뛴다. 무슨 책에서 그랬나 ..가슴뛰는 삶을 살아라고.. 지금까지, 아마도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이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은 아직 내가 젊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뿌옇지만 뭔가 환한 내일이 있다는 것. 서태지 노래 가사 같네 ..우린 아직 젊기에 화창한 미래가 있기에..
이 모든 여행에 함께 해준 팀원들과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주고 도움을 준 데이빗 인솔자와 함께한 이번 여행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옛 잉카제국의 수도 그 유명한 Cuzco(쿠스꼬)까지는 대략 1시간의 비행이다. 비행을 시작하자마자 곧 하강에 들어가 바로 도착한다. 산 중턱에 계속에 자리잡은 이도시는 온통 빨강색 지붕으로 물감을 뿌려놓은 듯하다. 해발 3500m정도이니 비행기가 한바퀴 돌더니 그대로 착륙이다. '쿠스코'란 페루 원주민 말인 Quechua어로 '배꼽'이라는 뜻이다. 태양신을 숭배한 잉카 제국에서 그들의 수도는 세계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Cuzco, ombligo del mundo."(쿠스코, 세계의 중심)
1532년 잉카를 침범한 스페인의 Francisco Pizzarro는 형제간 싸움으로 지친 잉카 왕Atahualpa를 카하마르카로 초청한 후 비무장 병사 2000명을 거느리고 나타난 왕의 측근을 순식간에 총과 기병으로 살육하고 아타왈파를 사로잡는다. 불과 180명의 스페인 병사와 스물 일곱마리의 말에 의해서 400여년에 걸친 잉카의 역사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인터넷을 뒤지면 이 장면을 기술한 피사로 비서의 목격담을 읽을 수 있다.
그 방 가득히 금과 은을 채워 주기로 하고 풀려 난 왕은 약속대로 금을 바치고 기독교로 개종까지 하였으나 피사로는 1533년 7월 16일 아타왈파를 교수형에 처하고 만다. 그 해 11월 쿠스코를 점령한 스페인 군대는 건물마다 가득 차 있는 황금을 약탈, 부피를 줄이느라 녹여서 본국으로 가져갔다. 원형으로 보존된 잉카의 황금을 거의 볼 수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복자는 제국과 함께 그들의 전통과 문화도 말살하고 만 것이다. 그 후 1536년 Manco Inca가 반란을 일으켜 저항을 시도해 보았으나 피사로 군은 칠레 원정에서 돌아온 300기마군의 지원을 받아 이를 평정하였고 1539년 잉카는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많은 군대를 가지고 어떻게 얼마 안 되는 스페인 군을 당해 내지 못하였을까? 총과 기병 등 무기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태양신이 보는 데서 싸워야만 한다고 믿었던 태양의 나라 잉카의 군대는 낮에만 전투를 하였고 전쟁보다 농사가 더 소중했던 군인들은 비가 오면 집으로 돌아가 모내기를 하였다 한다. 어수룩할 정도로 순박한 백성들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500년을 지나지 않은 멀지 않은 옛날의 슬픈 역사 이야기다. 언뜻보는 쿠스코의 집들은 낯익은 한국의 붉은 기와, 벽돌집과 비슷하다.
성벽위에 올라서면 쿠스코의 시가가 내려다보인다. 잉카 사람들의 세계관은 우주를 크게 하늘, 지상, 지하 셋으로 나누고 그 각각을 콘돌, 퓨마, 뱀으로 상징하였다 한다. 지구의 중심인 쿠스코를 퓨마에 비유하면 사크사이와만은 그 머리에 해당되기 때문에 지형적으로 쿠스코의 현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유적 뒤쪽에 있는 커다란 자연석 지하로부터는 쿠스코 중심 대성당 등에 이르는 미로 같은 지하도가 연결돼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6월24일 Inti Raimi, 태양 축제가 열려 잉카 시대의 의식을 재현한다. 이 행사는 브라질 리마의 카니발, 볼리비아의 오르로와 함께 남미의 3대 축제로 알려져 있다.
석벽 전면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다. 관광객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구경에 열중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문득 안데스의 플루트 Quena의 조용한 가락이 흐르기 시작한다. El condor pasa다. "철새는 날아가고" 라는 제목으로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러 유명해진 이 노래는 원래 안데스 사람들에게 영매로서 신성시되는 콘도르에게 당부하는 일종의 진혼곡이다. 1536년 5월, 망코 잉카는 2만의 병력으로 사크사이와만에 진을 치고 최후의 일전을 도모하지만 그 뜻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잉카 재건의 꿈은 바람 부는 이 들판에 이슬처럼 스러지고 만다. 세월은 흘러 460년, 구슬픈 피리 Quena의 곡조는 높아졌다 낮아졌다 돌담 구석구석을 채우며 구천 하늘 멀리 사라져 간다.
꾸스코의 길들은 언덕이 많다. 몇 걸음 걸을 때마다 호흡이 힘들어 쉬게 된다. 그리고 보니 오늘 내내 숨이 가빴다. 이것이 바로 고산증세인 모양이다. 말로만 듣던 고산증세 생각보다 매우 고통스러웠다. 차멀미하는 것 같기도 한데 도무 정신이 몽롱해지고 잠이와서 눈꺼플 무게가 천근만근이나 되는 듯하다. 답답하면 한번씩 심호흡을 해가며 겨우 몇발씩 자리를 움직인다.
예일대학 교수 Hiram Bingham은 1911년 7월 24일, 12세 인디오 소년의 안내를 받아 400년 넘게 잡초에 덮여 잠자고 있던 무인의 폐허를 발견한다. 지금부터 불과 100여 년전의 일이다. 원주민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알려 졌던 곳이라 발견이라는 말은 합당치 않겠으나 여하간 그로 인하여 이 세계 유산이자 페루의 대표적 건축 유적인 마추피추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떠날 때부터 흐린 하늘을 쳐다보며 개어 주기를 몇 번이나 빌어 왔는데 중턱을 올라선다. 주거지 사이를 비집고 돌아 나오니 홀연 안전에 마추피추가 전개된다. 더욱 신비로운 파노라마 앞에서 말할 수 없는 기대감에 심장은 고동치고 감격한 두뇌는 숨 막히는 경외감속으로 잠겨듬을 느낀다.
오후 4시에 출발한 기차는 급할 것이 없다는 듯 지루하게 달린다. 언제부터인가 계곡에는 어둠이 내리고 승객들은 거의 잠이 든다. 버스를 갈아타고 쿠스코로 가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한다. 몇시간이 넘도록 깃들었던 어두운 창밖에 어느 순간 휘영청 밝은 빛이 찾아왔다. 저 밑으로 차차 넓게 퍼져 가면서 시계를 가득히 채우는 한줄기 불. 감격스럽고도 형용할 수 없는 비장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먼 전쟁터에서 고향 어머니 품으로 돌아온 반가움과 그리움이 이런 것일까? 수수께끼만 남아있는 무인의 폐허에서 알지 못할 비애의 역사를 느끼고 온 허전한 가슴에 잉카의 슬픈 운명을 겪어온 그들 후손의 따뜻한 불빛은 원초적 일체감을 안겨 주는 듯하다. 동공으로 들어오는 불 빛 하나 하나가 화살처럼 초점을 찔러온다.
며칠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관광의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는 북미의 나이아가라, 아프리카의 빅토리아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불려지는 이과수를 찾았다. 이과수라는 이름은 원주민인 Guaranies 인디언의 말에서 나온 것인데 Igu는 물, acu는 장대한 것에 대한 경탄의 표시로 'Great Water'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물이 만들어내는 일대 교향시를 감상하게 된다.
아마존에 다음가는 남미 제2의 강 Rio Parana는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국경을 따라 남하한다. 세계 최대의 발전량을 자랑하는 Itaipu 댐을 지난 후 동쪽 Brasil의 Foz do Iguacu와 서쪽 Paraguai의 Ciudad del Este 두 도시 사이를 빠져 나오면 바로 Iguassu 강이 흘러 들어오는 합류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 지점이 바로 Argentina까지 합쳐 3개국의 국경이 맞닿는 곳이다.
처음에 보이던 부분은 이미 시계에서 사라지고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울창한 나무와 무지개를 곁들이며 갈수록 폭을 넓혀간다. 사람들은 전망대에 기대어 엄청난 규모에도 놀라지만 보다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바라본다. 여기야말로 최고의 장관이다 하고 사진을 찍지만 곧 더 좋은 곳이 나타난다. 갈수록 규모는 Escalate되고 물안개는 짙어지며 굉음은 모든 소리를 제압한다.
다음날 리오의 상징이고 우리나라 TV의 광고에 자주 자주나오는 양손을 벌린 예수상이 있는 코르코바도 언덕에 있는 그리스도상을 보러 갔다. "구름이 개여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그게 마음 한쪽에 걸려 있었다. 산봉우리는 올려다 볼 때마다 안개가 엷어졌다 다시 짙어졌다 공연히 마음을 졸이게 한다.
저녁 7시, 브라질과의 작별을 한다. 머리는 멍한데 괜히 기분이 너무 좋다. 브라질... 그 이름만 들어도 한동안 가슴이 뛸 것 같다. 이제, 또 가슴이 뛴다. 무슨 책에서 그랬나 ..가슴뛰는 삶을 살아라고.. 지금까지, 아마도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이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은 아직 내가 젊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뿌옇지만 뭔가 환한 내일이 있다는 것. 서태지 노래 가사 같네 ..우린 아직 젊기에 화창한 미래가 있기에..
이 모든 여행에 함께 해준 팀원들과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주고 도움을 준 데이빗 인솔자와 함께한 이번 여행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안녕하세요 손달호선생님!
선생님의 생생한 여행후기를 들으니 저희도 가슴이 뜨겁게 뛰면서 눈앞에 아름다움 남미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고산지대에 장기여행으로 힘드셨을텐데 여독 잘 푸시고 다음 여행발걸음도 함께하길 기대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