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19 코카서스3국은 그리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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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9 코카서스3국은 그리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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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행의 목적지는 대부분 나 자신의 주관적인 관심에서 시작되지만,
때로는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조지아가 내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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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행의 동행이었던 한 남자가
내게 조지아라는 생소한 나라에 대해 슬며시 흘렸고,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이지시리즈의 서병용 작가가 쓴
글 네 소절이 코카서스3국 여행의 결정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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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는
스위스 사람들이 산을 감상하러 오고,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러 오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음식을 맛보러 오고,
스페인 사람들이 춤을 보러 오는 곳‘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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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에 가야 할 이유가 서병용,
그의 네 마디에 다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린왕자가 '어른들의 우아한 여행'이라고
당돌하게 말하는 작은 별의 코카서스의 한붓그리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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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별이 이끄는 대로 그냥 떠나면 되는 것이고,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것이 있다면 수수께끼 풀듯이
그것은 내 호기심이 찾아내야 할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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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젠과의 첫 만남은 가슴보다
눈이 먼저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내게 다가왔다.
거대한 태풍이 휩쓸고 간 후의 자리처럼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하는 회색빛 반사막의 땅을 보면서
참 척박한 곳이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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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엄청난 유전으로 인한 오일머니가 수도인
바쿠의 스카이라인까지 바꿔버린 것을 보면서 어쩌면
그 엄청난 유전이 이 척박한 땅에 대한 신의 위로와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안타까움이 조금은 수그러들었지만,
쉐키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이 나라의 민낯은 소박하다 못해 애잔하기마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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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지진 때문에 미완성인 것처럼 보이는
작은 집들은 스스로를 치장할 패턴 하나 지니지 못한 채
그저 '주거'라는 시스템만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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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이 다해 빈 들판에 허수아비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시추기를 보면서 자본의 젖줄이 되어주는
석유마저 고갈되고 만다면 무엇이 그들을 위로하며 희망이 되어줄지.......
나는 여행지에서의 사진이나 기록을 남기는 것보다는
순간순간 내 가슴이 느끼는 감정의 기억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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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도 사진을 삼 십장 이상은
남기지 말자는 생각에 카메라를 손에 들지 않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늘 생각처럼 쉽던가....
조지아의 인위적인 힘이 보태지지 않은
숨이 막히게 아름다운 그 곳은 나를 자꾸만 카메라 앞에 서게 했다.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두세 시간씩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던 곳이 있었던가 기억을 헤집어 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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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고 있는 지난 여행지에서의 감동들이 '카스트라토 테너'였다면,
조지아의 풍경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고나 해야 할까.........
그것은 갈기를 세워 포효하는 수컷 같은 웅장함이 아니라,
부드럽고 섬세한 때로는 가슴속에 비수를 품은
암컷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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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륜구동을 타고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겨우 차가 지날 수 있는 만큼의 넓이였고.
그나마 폭우로 인해 무너져 내린 곳이 많아 간혹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 아득한 위험에 눈을 질끈 감아 버리곤 했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 많은 비가 왔던가.
계곡의 물은 허연 혓바닥을 들이밀며 으르렁거리는 야수와 같았지만,
협곡과 협곡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은
크고 작은 아름다운 폭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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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쉬굴리에 다다를 때까지의 두 시간여가 내게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신의 영역에 몰래 들어선 기분이었다.
자연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절경이 이것이구나 싶었다.
때 맞춰 게으롬 피우던 해가 구름을 헤치고
얼굴을 내밀면서 하늘을 찌를 듯
만년설을 두르고 서 있던 쉬키라(5201m)가 그 신비한 자태를 드러냈고,
구름들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몸을 산허리에 눕힌 채 깊은 잠에 빠져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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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물 들기 시작한 붉은 단풍은
되바라진 작부처럼 잇몸을 드러내고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고단한 삶의 질곡을 보여 주듯 예민하나 뇌쇄적이었고,.
노란 단풍은 아직은 몸의 굴곡을 채 만들어 내지 못했으나
둥글둥글 살이 올라 눈꺼풀을 내리고 수줍게 웃는 소녀처럼 나를 유혹했다.
나는 절경과 공포의 경계에 서 있었다.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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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계를 오가며 그것들이 결국은 극한 아름다움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느끼는 그 순간,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려왔다.
그것은 덜컹대는 사륜구동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샤콘느였다.
샤콘느와 우쉬굴리라니....
처절한 슬픔과 아름다움이라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었으나 그 둘은 기가 막히게 조화로웠다.
순간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인가 싶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샤콘느를 이 비경의 위험천만한 길 위에서 듣게 되다니
나는 그 균형을 깨뜨릴까 숨을 뱉어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내 안의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와르르 열리며 그것들을 받아 들였으나,
내가 가진 언어의 질량이 그것을 표현해 줄
온도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우울함이 협곡의 안개처럼 나를 감싸왔다.
조지아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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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게 가장 긴 여운으로 남는 곳은 아르메니아였다.
내게서 끝없는 '왜?'라는 질문을 낸 곳도 아르메니아였다.
이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내게 다가선 그들의 질곡 된 삶 때문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두 차례에 걸처 오스만 투르크는
이 나라의 지도자와 지식인들을 체포해 처형했고,
아르메니아인 강제 이주정책이라는 조직적인 집단학살로
150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예레반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추모 기념탑이 있는데
그 곳으로 가는 ‘Memory alley'에는
세계 유명인사나 각국의 정상들의 기념식수 명패가 세워져 있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명패는 찾을 수가 없다.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터키와의 국교 때문이리라.
걸어가는 그 길이 참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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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의 설명이 없어도 잔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사진만으로도 그 아픔이 오롯이 내게 전해지며
이 나라에 대한 애잔한 마음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내 안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그런 숱한 외세의 침략과 박해를 피해 깊숙한 오지로 들어간 수도원과
교회는 온 몸에 너덜너덜 상처를 입은 채
그네들의 질곡의 역사와 투쟁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잃으면서 까지도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처참하게 죽어간 그들의 영면과 안위를 위해 나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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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핍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교회에는
순백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신부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아름다움조차도 내 마음을 붙잡진 못했다.
그런 질곡의 역사가 있었고,
코카서스3국 중 가장 가난한 나라임에도
그들은 유쾌했고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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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7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지 7일 만에
우리의 통역가이드를 맡았던 미슈흐에게 물었다.
한국인과 아르메니아인 그 중 누가 더 행복해 보이냐고.......
그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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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부자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지만,
아르메니아인은 가난하지만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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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한 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그 곳이 바로 아르메니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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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여행이 늘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만 내 기억이 그것을 미화시키고,
시간이 기억 위에 색을 덧씌우면서 그것을 채화시키기 때문에
여행 시의 모든 불편함을 다 잊어버리고
여행이란 그저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이라고
내 스스로가 자신 안에 환상을 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코카서스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18일 동안의 여행은
서로에게 낯선 24명이 그 안에서 익숙함을 익히고
서로에게 익숙해질 무렵에 예정된 이별을 해야 했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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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24명 중
그 누구도 날을 세우지 않았고,
상대를 배려하며 흐르는 물줄기처럼 넘치지 않게 유유히 흘렀다.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남게 될 그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예고 없이 자신의 카메라 앞에 어줍잖은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어 달라던 나의 당돌함에도
싫은 기색 없이 웃으며 멋진 사진을 찍어주셨던
머나 먼 창원에서 오셨던 양영도선생님과
궁색한 나의 지혜에 살을 보태 주신 사대문 안에 사시는
김경숙선생님 등 많은 분들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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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가 어떤 기약도 나누지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작은 별에서 진행하는 아프리카 투어에서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 또한 더 없이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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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코카서스가 첫 만남이었던
김명자 길벗은 코카서스 인솔이 처음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상황 상황에 영민하게 대처를 잘 해주었다.
평균 연령 65살내기들이 어찌 흐르는 물처럼 그저 유유하기만 했겠는가?
가끔은 작은 돌도 만났을 것이고, 예상치 못한 급류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를 보이며 최선의 다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대견해 보였다.
설사 다소의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그녀를 더 단단하게 하여 스스로를 성장하게 할 것이리라 믿는다.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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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작은 별에 하고 싶은 말 몇 마디,
1. 어른들의 여유 있는 우아한 여행이었다고 하기엔
절대 우아하지 못했던 피곤한 일정이 조금 있었다.
이틀을 길에서 보내야 했던 바투미와 보르조미 일정은
그 곳의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포함됐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피로감에 비해 그 결과가 너무 가벼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티빌리시에서 3회 숙박이 있었기에
그 곳의 오후 자유 일정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자유 일정이 필요한 곳은 예레반에서였다.
(자유 디너가 1회 있었지만 밤의 한계로)
하루나 한 나절 쯤 자유시간이 있었다면
공화국광장을 중심으로 느긋하게 걸으며 그들의 문화와 일상을
충분히 느끼고 싶었는데 짜여진 일정은 너무 숨가빴다.
(캐스케이드 5층까지 겨우 올라가서 심호흡 한번 하고 나니
시간이 10분도 채 안 남았다. * 나게 뛰어 약속시간 겨우 지켰다. 헥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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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균 65세와 24명이라는 인원을 배려한
차량과 길벗(경험과 노련함이 있는 나이 든)의
섬세한 배정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들의 평균 연령이 길벗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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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
여행 가방은 아직 정리도 하지 못한 채 뱃속을 다 드러내놓고
아직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데
카톡이 ‘꼰대꼰대’
(나이 들어도 절대 꼰대는 되지 말자는 내 의지의 카톡 알림소리다)
하며 나를 부른다.
폰을 열어보니 어린 왕자가 지가 놀았던
사하라 사막에 가서 별을 헤잔다.
여우도 제대로 유혹하지 못한 녀석이 나를 유혹한다.
작은 별에서 어린 왕자를 데려가 사하라 사막에 묻어 버려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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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황홀한 가을의 코카서스를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그 기억을 잊지 않고 멋진 사진들과 함께 후기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코카서스에서 담아오신 기운으로 행복한 나날들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김명자 인솔자님께도 꼭 감사 인사 전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긴여정의 여독 잘 푸시고 다음번에 또 좋은 기회로 작은별과 함께 하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더불어 작은별에 보내주신 코멘트도 감사합니다.
더 고민하고 고민하여 더 아름다운 한붓을 그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후기를 참 유려하게 쓰셨네요 한편의 수필을 읽는 듯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