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마음은 남미를 누비고 있다
송출1위/남미여행
작성자
김회수
작성일
2025-01-28 23:12
조회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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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보다 몇 배를 경험하고 깨우치는 여행이었다.
2. 잉카문명과 스페인지배의 요약판 페루 리마, 이카, 와카치나, 쿠스코, 마추픽추, 우르밤바
현지 가이드 제시카의 친절하고 편안한 안내를 받으며 스페인의 식민지배가 남기고 간 리마 시내 광장과 건축물, 조각상 등을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시피한 건축양식이고 조각이지만, 그것이 식민시대에 현지 원주민에게 종교 개종, 절대적 복종 등을 포함하여 삶의 전체를 내놓도록 위압적인 폭력 지배와 정치의 상징이었음을 짐작케했다. 와카치나 가는 길에 마주한 태평양 해안선은 온통 강자갈과 모래, 그리고 약간의 흙이 섞인 사막과 같은 땅이 쭉 이어졌고, 가끔씩 해안에 조성 중인 리조트 단지들이 있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숙소, 풀장과 같은 물놀이 시설, 약간의 야자수와 같은 나무 등을 갖추고 있거나, 지금도 건설 중인 리조트나 주택단지가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 자본이 투자되고 있지만 언제 이런 휴양 관광 산업이 이 나라 국민들의 삶에 보탬이 될까? 사유지라서인지 도로변으로는 철조망이 해안도로(Pan America)를 따라 둘러처져 있다. 그 철조망에 바람에 날린 비닐조각들이 무수히 걸려 있다. 어떤 비닐조각은 얼마나 오랜 세월 바람을 맞았는지 실오라기처럼 갈래갈래다. 도저히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물기 없는 사막 같다. 그런 척박한 땅에 군데군데 나무나 야자수를 심어 사막화를 막고 수분을 고정하려는 주민들의 노력이 가상하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그래도 곳곳에 밭이 일구어져 있고, 호박, 아스파라거스 등 채소를 가꾸고 있다.
중간에 도착한 이카의 와이너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척박한 해안 사막 먼지 투성이 길을 달려 도착한 와이너리 식당은 그런 와중에도 훌륭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식사 후 식당 곁에 있는 와인 시음회에 들렸는데, 와인이 너무 달다. 햇볕에 오랫동안 말린 건포도 단맛 같다. 좀 드라이(dry)한 와인은 생산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냥 내 추측이지만. 좀 더 이것 저것 보기도 하고 맛도 보면서 더 머무르고 싶지만 다음 목적지를 위해 이동해야 한단다. 버스를 달려서 와카치나라는 오아시스 마을에 도착했다. 먼지로 컬컬해진 목을 축일 수 있을 것 같은 오아시스, 내일 또 먼길을 가야 하는 힘든 나그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오아시스다. 수영하는 사람도 있고, 작은 호수주변 잔디밭에 자리깔고 누워있는 사람도 있다. 물은 마르지 않고 충분히 샘솟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 즈음에 물이 부족해서 수도물을 보충한다는 설명이 들려왔다. 그말에 낭만적이고 생명의 원천 같은 오아시스에 있다가 갑자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레고(Lego) 세상에 떨어진 기분이 스멀거렸다. 모래 사막에서 버기카에 나누어 타고 운전기사가 곡예운전을 하는 내내 탄성인지 비명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톤이 극히 높은 소리를 모두가 지르기도 한다. 특이하고 재미있는 찰라같은 모험이었다. 모래 언덕을 요리저리 타고 넘는 버기카는 여행객들의 심장을 꺼내서 쥐락펴락하는 잉카시대의 전사나 주술사 같다. 하지만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많았다. 안전벨트는 많이 낡았고 - 언젠가는 보수가 되겠지만, 우리 차는 그랬다 - 굵은 철봉을 땜질하여 골격을 보완했지만, 차량이 회전할 때나 급한 경사를 내달릴 때 받는 압력이 엄청날텐데, 끝까지 잘 견딜까? 운전기사가 베테랑이니까 괜찮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 착각에 근거 없는 믿음이 생기는 것 같았지만, 탑승자들의 함성을 유도하기 위해 자꾸만 간이 철렁 내려 않는 운전을 하다보면, 언젠가 그 믿음이 무너질 날도 있을 것 같다는 우려도 하게 했다. 조바심과 불안감이 우리에게 곡예운전이 가져다 주는 스릴에 매운 양념을 쳤다. 물론 스릴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때까지는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신이 보장해준다면 한 번은 해봄직한 모래언덕 타기였다. 중간에 일몰이 왔다. 사막위의 일몰은 그간 곡예운전에 졸였던 마음을 싹 지우게, 탈탈 털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모래 지평선 저쪽으로 지는 해는 내가 마치 사막을 몇 날 며칠 건너야 하는 사하라의 대상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착각을 불러왔다. 많은 일행과 같이 있는데도 혼자 고독하게 서있다는 착각이 빚어낸 외로움과 갈 길이 너무 멀어서 서두를것 없을 것 같은 느긋함이 일몰 내내 함께 했다. 두 번 모래 언덕 썰매를 탔는데, 버기카보다 여유롭고 왠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눈밭에서 비닐 깔고 썰매를 많이 타봐서 그런가? 급한 경사에 나뒹굴지 않으려고 발로 버티고 손으로 썰매를 단단히 움켜잡고 바둥거리는 내 모습을 하늘의 신이 봤다면 아마도 박장대소했을 것이다. 막상 썰매타고 내려오니 별 것도 아니었는데, 뭐그리 마음을 졸이고 움츠렸는지, 참나… 창피하다. 다시 타면 폼나게 할 것 같은데…
비행기로 도착한 쿠스코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산지역이어서 인지 숨쉬는 것이 아래지역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지 가이드 조르단과 마리아는 여행객과 소통이 가능할 만큼 한국어를 썩 잘했고, 안내도 친철하고, 무엇보다 사진 찍어주는 것부터 설명과 안내에 이르기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참 마음씨가 곱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 일행은 없었을 것이다. 이 두 가이드는 마추픽추, 우르밤바까지 동행하는 내내 여행객들이 믿고 의존할 수 있는 든든한 가이드이자 보호자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대성당, 아르마스 광장, 12각 돌 등을 보고, 광장에 연해 있는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했다. 정복의 역사, 민초들의 힘든 피지배의 역사가 지울 수 없게 새겨진 광장의 한 면에 떡하니 자리잡은 스타벅스는, 이번엔 미국 자본주의가 정복자, 침략자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커피를 마시는 내내 마음 한 켠이 또 다시 짓눌리는 것 같았다. 저녁에 문화센터에서 전통춤을 무료로 관람했는데 - 사람들은 별로라고 했지만 - 나에게는 그들의 복장과 춤사위가 단순하고 모든 춤이 비슷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데스에서 평화를 사랑하며 살아 온 사람들, 자신들의 삶의 전통을 유전자처럼 고수하고 대대로 물려줘 온 사람들의 진한 향기였다. 한 시간 내내 좋았다. 더구나 무료 공연이지 않는가! 공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료공연을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겠다. 이들에게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나 소중해서이지 않을까? 쿠스코 외곽으로 고개를 넘어 도착한 호텔은 도로가에 있는 등급이 그리 높지 않는 숙소이었지만, 작은 정원도 있고, 산소흡입 서비스도 있고, 식당도 그 수준에서 깔끔한 곳이었다. 저녁에 집사람과 함께 주문한 과일 셀러드와 피자는 그런 외지에서 별미이기도 했고, 실속 있는 식사이기도 했다.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여행은 작은 협곡을 흘러내리는 좁다란 계곡과 함께 하는, 아열대 우림지역을 차창을 통해 손에 잡을 수 있을듯이 느끼고 즐길 수 있게 한 꽤 멋진 여정이었다. 기차에 지붕창이 있었다면 더할나위 없었겠다. 협곡 양 옆으로 간혹 나타나는 만년설산들이 지금 달리는 기차가 한참 높은 고산지역을 한가롭게 가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게 한다. 그러나 아무도 고산병 증세를 호소하지 않았다. 모두 영혼을 주변 계곡, 아열대림, 설산 등에 거저 맡긴 모양이다. 이 협곡 기차여행을 여행 일정 목록에 진한 글씨체로 꾹꾹 눌러 박아도 좋겠다. 마추픽추 입구에서 셔틀을 타고 올라가는 길 내내 계곡이 얼마나 깊은지, 주변 산이 얼마나 가파르고 높은지를 실감하게 했다. 산의 경사가 90도는- 그럴리는 절대 없지만 - 족히 되어 보인다, 뻥을 좀 섞자면 말이다. 마추픽추! 막상 마주대하니 거대하다는 느낌보다는 작은 부족이 살기에 적합한 아담한(?) 규모, 그러나 이런 높은 산꼭데기에 이런 곳이 있다니,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존경심이 더 컸다. 마추픽추가 TV에 소개될 때 내가 미국 그랜드캐년 규모의 거대한 석조 도시를 기대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와보니 규모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엄청나게 큰 돌덩이를 떡 주무르듯 하여 거주지를 만들고, 광장을 만들고, 신전을 만들어 천년만년의 터전을 만들고자 했던 잉카족의 지고한 생각과 기술은 심지어 외계인이 건설했다는 이론이 솔깃해질 정도였다. 부족의 힘으로 이런 석조도시(마을)를 건설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현지 가이드 조르단과 마리아의 상세한 설명이 더해져 각각 건축물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잉카문화가 침략으로 도륙당했다니...
우르밤바에 대한 이보연가이드와 현지 가이드의 설명 덕분에 성곽 같은 석조물의 역사와 의미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오얀따이땀보에서는 계단식 거주지(공동체 신전?)와 맞은 편에 있는 감자 보관 창고 석조 건축물이 인상적이었다. 감자가 주식이어서인지, 얼마나 소중하게 감자를 보관했는지 짐작케하는 건축물이다. 지금도 그 당시 건설했던 마을 물길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소금염전 살리네라스는 여진히 소금을 생산하는 마을 공동 경영체로 운영되고 있었다. 오래된 소금 생산방식이지만 현대에 와서도 생존할 수 있는 산업으로 탈바꿈해가고 , 그래서 생존력을 확보해가는 그들이 장하다. 부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오염되지 않게, 소중한 삶의 방식이 자손에게도 잘 대물림되게, 그렇지만 서구 거대 자본주의 먹구름 아래서도 당당히 한 줄기 빛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으면... 계단식 논으로 이용되었다는 모라이 유적도 잉카 문명의 기본이 석기라는 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과학적 감자 등 농작물 재배법을 연구할 정도로 당시에 꽤나 선진적이었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위에서만 볼 수 있고 내려갈 수가 없어서 - 내려갈 수 있게 했다면 금방 폐허가 됐겠지만- 아쉬웠지만, 사진 몇 장 찍고, 위에서 상인인지 마을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파는 삶은 옥수수 한 입에 그 아쉬움과 퉁쳤다.
다시 돌아온 쿠스코!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삭사이와망은 스페인과 현지 원주민 간의 전쟁을 다시 기억으로 소환하는 듯했다. 이곳에 살았던 원주민들은 거대한 돌로 신전과 방어막을 치면 부족의 안녕이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아니 내 가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겠지만, 일찌기 철기로 무장하고 약탈적 식민지 구축에 혈안이었던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을 막아낼 수 없었던 것 같다. 철기시대의 문명과 석기시대의 문명이 충돌했고, 인류역사에서 모두 증명했듯이 철기시대 문명이 백전백승했다. 슬픈 역사의 현장 중의 하나다.
3. 마음이 짠해지는 볼리비아의 미래가 지금보다는 나아지기를 기원한다.
라파즈 공항에서 시내 중심으로 이동하는 길에 마주한 주변의 경관과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강자갈, 모래, 흙으로 된 강바닥 퇴적층이 화산활동으로 융기한 탓인지 시내의 모든 지반이 무른 것 같다. 마음씨가 여리지만 여행객인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도와주려는 현지 가이드 크라스티안과 안드레이아의 지극한 안내와 도움으로 둘러본 '달의 계곡'도 무른 지반에 비가 오면서 흙이 흘러 내려 기괴한 모양으로 형성된 지형물이었다.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몇 해 더 비가 와서 달의 계곡을 적시고 씻어내기를 반복하면 모양이 많이 일그러질 것 같다. 시내를 관통하는 강(천)은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누리끼리한 거품이 온통 뒤덮고 있다. 생활폐수 오염이 심각하다. 언덕에 지은 집들은 비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형국으로, 폭우에 집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비닐포장지나 부직포 같은 것으로 물길을 내거나 보수한 곳이 많다. 다음날 저녁에 들른 마녀시장에서 왜 어린 야마와 같은 박제동물이나 말린 동물을 파는지 짐작이 갔다. 이렇에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토속신앙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심정이었을테다. 박제동물이나 말린 동물을 집터에 묻어 신에게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제발 비나 지진에 집과 가족이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가난에 지친 사람들이 이런 힘든 환경에 대응하는 것은 거의 맨손으로 태풍이나 홍수를 막겠다고 덤비는 것처럼 무모한 몸부림 아니겠는가? 티티카카호 가는 길에 풀이 듬성등성 난 초원과 그곳에 긴 줄로 매어 있는 소들이 짧게 자란 풀을 뜯고 있다. 사람이나 소나 참 어렵게 산다. 티티카카호수는 생각보다 넓고 아직은 깨끗하다. 하늘만큼이나 물이 맑고 비교적 생태계가 건강한 것 같다. 오리와 같은 철새도 있고 수생식물도 잘 자라고, 그곳에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도 건강한 것으로 보인다. 별천지다. 하루나 이틀 이곳에서 숙박하면서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산지역만 아니라면.
우유니 기차무덤과 소금사막 여행은 파니라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여성 현지가이드와 함께 SUV 차량들로 다녔다. 소금사막 여행이 인상적이었는데, 넓은 소금사막위에 비가 와서 20-30cm 정도의 물이 덮고 있었다. 염도가 어찌나 높던지 튀긴 물이 옷에 묻으면 곧바로 소금자국으로 변했다. 소금물에 투영된 물그림자와 물위의 사람, 하늘의 구름과 물속의 그림자가 완전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여성일행들이 특히 사진을 찍느라 온통 영혼을 팔았다. 물론 남성 관광객 일부도 마찬가지였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현지가이드 파니의 지휘아래 일행 전원이 그럴사한 십자모양의 동영상을 만들었다. 꼭 잘 연출된 영화 장면 같다. 모두가 주연이었다. 저녁 무렵 다시 와서 찾은 우유니의 일몰이 소나기 구름과 함께 지상과 수중에 대칭이 되는 멋진 일몰 장면을 연출했다. 숙박을 위해 들른 소금호텔! 사정은 이해하지만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소금호텔은 소금으로 만들었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감흥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잔뜩 소금물을 뒤집어쓴 하루여서 그런지 일반호텔이 더 그리웠다.
SUV 차량으로 알티플라노 고원을 지나면서 마추치는 고원의 풍경은 대부분 황량하기 그지없었지만 - 마치 과거 서부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미국 텍사스 서부의 모습처럼 - 간혹 삐꾸냐, 야마가 몇 마리씩 먹을 거라고는 보이지 않는 마른 풀밭을 돌아다녀서 이곳이 여전히 생명이 살고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관광객을 실은 차량들이 많이 다녔나보다, 고원 흙모래길 이곳 저곳에 바퀴자국으로 만들어진 도로가 있는 것을 보면. 시크릿 라군에 이르니 수십마리, 수백마리의 야마와 삐꾸냐가 이끼와 같은 풀을 뜯고 있고, 얕은 호수에 플라맹고가 프랑크톤을 걸러먹고 있다. 몇 마리는 나름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 한 마리 혹은 두세 마리씩 줄 지어 품위있는 걸음을 걷고 있다, 마치 자존심 쌘 귀족 부인 같은 걸음걸이로. 야마의 귀나 몸통에 주인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식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 주민들이 기르고 있는 가축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의 자연 생태는 TV에서도 본 적이 없다. 아니 봤다 하더라도 눈앞에서 직접 대면할 때의 생생함, 생동감, 모든 감각으로 느끼는 그런 전율과는 비할 수 없다. 그냥 눈에 담고 냄새로 촉감으로 그리고 이 시간 그대로 기억하고 싶다. 한두군데 호수를 더 보고 밤이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허술한 숙소이었지만, 이런 고원지대에 이런 숙소가 운영되고 있다니 다행스러웠다. 물사용을 극도로 자제해야 했지만 히터가 작동해서 밤새 춥지는 않았다. 숙소주인장의 정성을 다한 저녁과 아침 식사가 고마웠고 맛있었다. 아침에 대접받은 이보연인솔자가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누룽지가 별미였다. 다음날 라구나콜로라다에서 더 많은 플라맹고를 보았고, 그곳에도 야마들이 있었다. 호수가에서 온천수가 공급되고 있어서 호수가 얼지 않아 철새들을 불러오는 것 같다. 몇 개 호수를 더 보고 지나는 길에 천연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약간 원기를 회복했지만, 며칠째 계속되는 고산증세로 여러 사람이 고생하고 있다.
버스로 볼리비아 국경을 통과해서 볼리비아 현지 가이드, SUV 기사들과 작별했다. 현지가이드 파니와 기사(내차 기사는 블라드미르)의 도움으로 고원 여행을 잘 마쳤고, 고원이 그렇게 삭막하지 않은 생명이 숨쉬는 곳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다. 블라드미르가 여행 내내 틀어준 볼리비아 음악 덕분에 향토색 짙은 고원 여행을 했고, 볼리비아 음악에도 이제 꽤 익숙해졌다. 칠레 국경 출입국관리소와 세관을 통과해서 칠레에서 온 버스에 올랐다.
4. 남미의 부유한 농수산국가 칠레
가난한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 칠레에 들어서자 모든 것이 변했다. 풍력발전과 태양광 발전 시설들이 즐비했다. 칼라마에서 하룻밤 자고 산티아고로 이동했다. 산티아고는 유럽이나 미국의 정비된 도시와 같이 상당히 깔끔한 곳이었다. 대성당, 대통령궁 등의 광장을 둘러보면서 현지가이드 로드리고의 상세한 영어 안내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 로드리고는 원어민과 같은 영어를 구사했고, 가끔씩 발휘하는 유머 감각이 뛰어나서 여행객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었다. 칠레 독립과 개혁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저녁 자유 식사 시간에 예약해서 방문한 해산물 식당은 최고급 거리에 있었고 -바로 옆이 고급 쇼핑몰, 옥상층에 째즈 연주와 바도 있었음- 음식을 고급스럽게 잘 만들어 제공했다. 내가 AI의 추천을 받아 선택한 곳인데, 아주 좋았다.
다음날 발파라이소 시티 투어는 예술가들의 도시답게 벽화가 화려하게 도시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칠레의 제2도시라고 했고, 해군기지도 있는 곳, 예술가의 도시 등등의 설명이 있었다. 나름 특색 있는 거리를 걸을만 했고, 괜찮았다. 고즈넉한 골목길과 벽화들은 그 골목 한 카페에서 칠레산 와인이든 커피든 한 잔 하고 여유를 부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웬수놈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서 아쉬움만 가득하니 핸트폰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다. 물론 벽화를 볼수 있는 도시가 전세계에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게 독특한 도시는 아니었지만, 칠레 개혁가 아헨데의 고향이라는 가이드의 이야기가 도시 풍경과 버무러져 그저그런 도시가 아닌 칠레 혁신의 본산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볼만하고 숨을 들이쉬어 느끼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점심 식사장소는 해산물 식당인 무슨 Castillo 이었는데 음식과 서비스가 모두 별로였다. 음식은 너무 짰고 - 동료들도 모두 짜다고 했다- 마지막 계산도 고객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생각대로 몇 사람을 묶어서 계산을 하고 전혀 영어가 통하지 않아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계산하고 나왔다. 뭐랄까, 너무 분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손님을 짐짝 취급하거나 얼른 해치워야 하는 뜨네기 취급하는 느낌이 강했다. 다음에는 좀 더 아늑하고 친절한 식당에 가면 좋겠다. 아늑함과 친절함이 음식 맛의 절반은 좌우하지 않는가? 이어서 참여한 와이너리 투어, 전통이 짧은 친환경 와이너리였는데,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공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세 가지 와인 시음이 전부였다. 기대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물론 식사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안내가 되긴 했지만, 간단한 식사와 함께 이곳에서 생산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몇 가지 음식별로 와인의 페어링이 있었다면 더 할 나위 없었겠지... 비용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말이다. 내가 관광옵션을 잘못 택했나 하는 후회가 많았다. 차라리 다른 옵션이었던 골프투어를 갈 것 잘못 선택했다는 뒤늦은 생각도 살짝 해봤다. 전체적으로 산티아고의 관광 프로그램은 아헨데의 칠레 개혁이야기와, 내가 스스로 선택한 저녁 식사 레스토랑과 고급쇼핑몰에서의 맥주 한 잔과 째즈 연주 감상을 빼면,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다. 물론 이보연인솔자와 현지가이드의 칠레 개혁의 역사와 정치에 대한 설명은 들을만했지만.
푸에르토나탈레스는 조그만 항구도시, 항구마을로 그 자체가 아름다웠다. 해변에 위치한 호텔, 일직선으로 배치된 음식점, 바, 상점, 환전소 등 아담하고 편안한 곳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일행과 바 겸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고, 저녁은 집사람과 우연히 찾아낸 브리스킷을 하는 식당에서 먹었다. 모두 최고 수준은 아니었지만 가성비 면에서 아주 좋았다. 다음날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을 갔는데, 입구에서 내려다본 공원 입구가 있는 town의 모습은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눈에도 담고 카메라에도 담고, 가능하면 호주머니에도 한 움쿰 담고 싶은 풍경이다. 호수까지 가는 길에는 바람이 무척 강했고, 호수에서는 바람에 맞설 수가 없을 정도로 모래바람이 거세서 오래 있지 못하고 나왔다. 하지만 아름다운 곳이었고, 빙하 녹은 물로 이루어진 호수의 비취색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특히 전망대에서 바라본 설산 봉우리와 폭포 등은 그 위용과 아름다움을 비견할 곳이 없을 것 같았다. 아직도 독수리 봉우리가 눈을 머리에 인 채 호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다.
칼라파테로 이동해서 언덕 위에 있는 Hotel Alto Calafate에 묵었다. 가까이 호수와 호수주변의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저녁에 추천해 준 Asador 전문 식당에 갔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망이 전혀 없었다. 스테이크도, 와인도 좋았다. 다음날 엘 찰튼으로 가서 피츠로이 트레킹을 했다. 숲이 아주 잘 관리되고 있었고, 내려다보는 경치도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설산은 구름에 가려서 잘 볼 수 없었지만, 그 주변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내내 바람을 막아준 산 덕분에 편안하고 즐거웠다. 두 명의 현지 가이드가 능수능란하게 우리를 트레킹 요소요소의 비경으로 안내했고, 토막토막 가르쳐주는 스페인어 강습으로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잘 내려왔다. 다음날 모레노 빙하 쿠루즈와 빙하와의 대면은 칠레 여행의 백미였다. 하루 2미터씩 밀려 녹아내리는 빙하 이야기, 그리고 거의 2분간격으로 폭발음을 내며 떨어지는 빙하조각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일 것이다. 지구 종말의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 같은 모레노 빙하는 눈에 담고 귀에 저장하고 싶은 장엄함과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모두들 영원히 기억하고 싶고 간직하고 싶어서인지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을 것 같다.
5.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나 정경이 불안한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항구는 관광지로 잘 개발된 항구 도시였다. 유람선을 타고 돌아본 비글해협 투어에서 등대와 해양동물 관람은 여느 해변에서 봄직한 경험들이었다. 나에게는 기차를 타고 찾아간 세상끝 우체국과 우체통보다는 가는 과정에서 본 야생마, 숲, 시내물의 조합이 만들어낸 자연 풍경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고, 기차를 타고 오가는 내내 자연에 무척 가까워진 느낌이었다.아직도 야생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잘 관리하고 있는 숲에는 고사목들이 톱으로 잘 잘려서 조금씩 조금씩 땅으로 흙이 되어 묻히고 있었다. 어떤 통나무 토막은 거의 다 묻혀서 머리 꼭데기만 살짝 드러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티투어에서 대통령궁, 국회의사당, 대성당, 그리고 골목길 건물 등 모두가 스페인 식민지풍이다. 아르헨티나 원주민들의 색채를 찾기 어렵다. 시내에 있는 아테네오 서점은 저택을 서점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여전히 유럽풍의 건물이 기본이었다. 근처에 있는 갤레리아스 백화점은 아르헨티나 빈부격차를 피부로 느낄만큼 호화롭고 사치스러웠다. 보카스주니어의 연고지이자 탱고의 본산인 라보카지역을 둘러보고서 아르헨티나의 현재 경제상황과 빈부격차를 좀 더 실감할 수 있었고,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직접 보기를 잘했다 싶다. 작은 크기의 2-3층 건물, 노랗게 파랗게 벽칠을 해서 화려하게 보이지만 얼마나 가난하게 사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라보카 지역 골목들, 골목 여기저기에 작은 크기의 그림을 철재 선반에 주렁주렁 걸어 팔고 있는 모습, 보카스주니어 팀 응원 티셔츠를 그래도 갖춰 입은 옷차림으로 뽐내고 있는 사람들, 이런 것들이 중심부와 섞이지 못하는 아르헨티나 변두리 풍경 같았다. 이런 곳에서 탄생한 탱고. 저녁에 탱고 쇼를 관람했는데, 그 의미가 내게 더 선명했다.
시내 투어 중에 뭐라도 하나 더 찾아서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예를 쓴 유예찬 현지가이드의 노력하는 모습이 선하다. 아직은 프로처럼 보이지 않지만, 저렇게 성실하면 언젠가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전문가가 되리라. 현지가이드에게 패론정권에 대한 해석을 할 때 한 가지 고려하라고 추천하고 싶은 점은, 에바 패론과 패론 대통령에 관한 역사적 정치적 해석이 다양하고, 진정한 개혁이 아닌 포플리즘으로 위장한 권력 독점을 노린 정권이었다는 비판이 있다는 점도 고려했으면 하는 점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본 이구아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은 영혼을 빨아드릴만하다고 생각되었다. 브라질로 넘어와서 본 이구아수는 마치 폭포의 병풍같기도 하고, 눈높이에서 폭포를 보고 들을 수 있어서 감각으로 폭포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보트투어는 이구아수 폭포 투어의 꽃이었다. 최안드레라는 현지전문 가이드이자 거의 전문엔터테이너의 안내로 가진 보트투어는 그간의 스트레스나 피로를 말끔이 씻어냈다. 정말 좋았다.
6. 브라질 리우와 상파울로 투어는 많이 아쉽다.
브라질 리우에서 많은 시간 기다리고 , 별로 달갑지 않은 '작은 뇌물을 줘서 우리팀은 좀 빨리 기차나 케이블카를 탄다'는 현지 가이드의 자랑 삼아 하는 멘트를 들으며 예수상과 빵산을 찾았다. 기다림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 예수상이 있는 곳에 올랐을 때는 그간 방송에서 많이 보던 곳에 내가 직접 왔다는 느낌이 거의 전부이었다. 아래 풍경은 안개와 스모그로 잘 보이지 않았다. 정말 많이 기다려서 빵산에 올랐는데, 풍경은 선명했지만, 예수상에서 이미 본 풍경에 사방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다는 점이 더해졌다는 점 이외에는 별반 다른게 없다. 이렇게 오랜 시간 기다려 케이블카 타고 겨우 올라왔는데 말이다. 빵산에서 먹은 아사히아이스크림은 시원해서 좋았다. 상파울로에서는 공항안에만 지나와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브라질은 아무래도 다시 와야 될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앞의 일정을 좀 조정해서 브라질 리우와 상파울로에서 2박3일 또는 3박4일은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7. 귀국길이 너무 멀었다.
원래 LA를 경우해서 인천이었는데, 런던을 경유하게 바뀌어서 리우-상파울로-런던-인천으로 이어진 항로는 사람의 진을 빼게 만들었다. 나이들어 economy 석 타는 사람들에게 여간 힘들지 않는게 아니었다. 그룹 티켓이다 보니 나를 포함한 대부분 일행들의 좌석이 주로 맨 뒤였고 추가 비용으로 좌석 업그레이드도 불가했다. 물론 사전에 비즈니스 좌석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프리미엄 이코노미 정도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겠지라고 예측한 사람에게는 참 딱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상파울로에서 런던까지 맨 뒷좌석, 그것도 화장실 문 앞쪽 좌석을 배정받았는데, 화장실 드나드는 사람들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었고, 기체가 흔들릴 때는 너무 진동이 심해서 멀미가 날 지경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앉아야 하니까 항공기 좌석배치구조를 확 바꾸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이 안 되겠지요? 물론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시간을 좀 보낼 수 있어서 한 편으로 좋은 점도 있기는 했다. 면세점 쇼핑이 그 중의 하나에 속할 것이다. 난 별로 구입할게 없었지만….
8. 그래도 이번 여행은 좋았다.
종합해보면 행복했고 값진 여행이었다. 지금도 남미 여정 어디쯤인가에 있는 것 같다. 훌륭한 이보연인솔자와 현지가이드, 그리고 차량 운전사님들 때문에 안전했고, 편안했다. 이들이 우리 여행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궁금해하기 전에 모든 것을 미리 안내한 이보연 인솔자의 전문성과 배려에 특별히 감사한다. 그는 각양각색의 성격과 관점이 다른 사람들을 모두 포용하여 여행이 최상의 목적과 가치를 실현하도록 하는 엄청난 내공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 작은별여행사의 남미 한붓그리기 프로그램도 점점 좋은 쪽으로 진화하여 최고의 여행 프로그램이 되리라고 믿는다. 많이 배웠다.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하고,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힘들게 살아가는 남미 모든 분들이 좀더 행복해지기를, 삶이 좀 더 나아지기를 기도한다.
장문의 여행후기 보면서 작가이시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도 해봤네요
즐주말되시고 우리 남미여해자들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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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자 허창식 올림
와, 정말 긴 여행 후기를 남겨주셨네요! 남미 여행의 깊은 경험과 감동이 묻어나는 글이라 한 편의 여행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다양한 나라와 문화, 역사적 배경을 통해 경험한 것들이 정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아요.
특히 각 나라에서의 경험이 얼마나 생생하게 다가왔는지 잘 전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페루에서의 잉카 문명과 마추픽추 탐방, 볼리비아의 고산지대와 자연을 느낀 순간들, 칠레에서의 풍력발전과 청정 에너지,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의 정치적·경제적 불안정성까지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셨을 것 같아요.
또한, 현지 가이드들과의 소통과 그들이 보여준 전문성과 따뜻함도 여행을 한층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줬을 것 같습니다. 가이드들의 세심한 배려와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 여행의 만족도를 높였을 것 같아요.
여행을 통해 얻은 지식과 감정들이 마음속 깊이 남아 있겠죠. 남미에서의 경험은 그 자체로 값진 축복인 것 같아요. 후기가 매우 구체적이고 진솔해서, 이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여행도 저희와 함께 그려주세요!
-작은별 여행사 남미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