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의식 속에 숭고함이 배어있는 공덕과 나눔의 탁발
루앙프라방의 아침을 여는 탁발공양행렬
(2015. 3. 30)
라오스 여행의 마지막 날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인
루앙프라방의 탁발을 보러 이른 아침인 5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이미 오기 전에 루아프라방의 탁발행렬은 이미 상업화 되어
경건하고 숙연한 의식의 요소를 찾기 힘들다고 듣고 왔다.
여기서 상업화됐다는 얘기는 스님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여행사와 현지인들이
각종 집기와 밥을 파는 행위가 도를 넘었고 구경꾼으로 전락한 관광객들은
실시간으로 현장중계하듯이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상황이라
예전의 경건함을 잃고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얘기다.
물론 라오스 국민들의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테니 다행이고
사실 나 역시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니 비난할 자격은 없다.
아직 어두운데 바나나 등의 과일과 밥을 탁자에 준비해 놓고 있다.
그럼 거의 밤을 새우며 준비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돗자리, 방석, 목욕탕 의자, 몸에 두르는 천과 밥을 준비해 주고 돈을 받는다고 한다.
현지인들이 앉아 공양을 드리던 자리를 우리나라와 중국, 태국 등
불교를 많이 믿는 국가의 관광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분들은 나처럼 무종교이거나 얼치기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기다리던 탁발공양이 시작됐다.
이 사진은 국적은 몰라도 아지매가 고와서 담았다.
이 장면이 바로 나눔을 실천하는 장면이다.
탁발행렬이 지나가는 중간 중간에 바구니가 놓여 있고
스님들은 자신의 그릇에서 음식을 덜어 바구니로 옮겨 담는다.
행렬이 끝난 후에 가난한 이들이 와서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가져 간다고 한다.
참 자연스런 나눔의 실천으로 숭고한 정신이 배어 있다.
뭐라 말하기는 그렇고 참 대비되는 사진이다. ㅎㅎ
라오스나 미얀마의 남자 어린이는 몇 주 혹은 몇 개월 동안 출가해
단기 승려생활를 마쳐야 하는데 아마 그런 기간에 속한 스님들로 보인다.
어느 스님이 한국에 다녀온 후에 한국불교가 너무 좋더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어떤 점이 그리 맘에 드시더냐고 여쭈니 그 스님 왈
"라오스 절은 하루에 두 끼만 먹는데 한국 절에서는 하루에 세 번씩 먹어서 참 좋더라구요"
ㅎㅎㅎ
탁발행렬의 끝이 지나가면 하루의 장사도 끝인데 아직 팔아야 할 물건이 남았다.
여기는 현지인 분들의 공양모습이다.
불심이 깊어서 고우신 걸까?
꼼짝않고 할머니 곁을 지키는 개마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전날 밤에 저녁을 먹었던 블루라군 간판이 보인다.
이쯤에서 탁발행렬은 끝났고 스님들은 각자 자신이 머무는 사원으로 흩어졌다.
아마 밤을 새며 팔 음식을 준비하여 새벽길을 나섰을텐데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발걸음이 가벼워 지셨나?
베트남 이름으로는 "꽝 가인"으로 베트남 여인들의 강한 생활력을 나타내는 도구로
"어머니의 지게'라고 부르는데 여기 라오스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지게의 크기도 작고 모양도 바구니라서 개량형으로 보인다.
자신의 사원으로 돌아온 젊은 스님
이 어르신은 몸이 불편해 보였는데 음식을 가지고 사원으로 들어 가셨다.
그리고는 어느 묘앞에서 정성껏 제를 올리셨다.
호텔 조식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산책을 했는데 시내 곳곳에 사원이 많았다.
루앙프라방 다운타운의 끝자락 메콩강과 남칸강이 만나는 지점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왓 씨앙통에서 나와 소공원에서 쉬어 가려는데 15,6세로 보이는 어린 스님이 다가와
자신은 공부를 하고 싶어 책을 사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분명 도와달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사회 통념상 구걸이 허용되지 않는 라오스에서
구걸에 가까운 스님의 모습에 당혹스럽기도 하면서 문화의 차이를 실감했다.
지금까지도 내게 돈을 달라는 말을 빙 둘러서 표현했던 것이었을까?
무척 궁금하다.
루앙프라방 왕궁박물관
루앙프라방은 다운타운이 작아 걸어 다니면서 모든 것을 보고 즐길 수 있다.
사원들은 루앙프라방 형식으로 지어서 모습이 비슷비슷하다.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는 여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