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라씨팀 아프리카 배낭여행 7일차
(여행 7일차) 내 생애 가장 위험했던 킬리만자로산 트레킹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지역에 우뚝 솟은 킬리만자로산은 해발 5,985m로 적도를 지나면서도 만년설과 빙하가 있는 아프리카의 최고봉이다. 킬리만자로산 하면 생각나는 게 조용필의 노래에 나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하이에나다.
정상 주변이 마치 녹아내리는 하얀 아이스크림처럼 보이는 킬리만자로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우리가 묵을 모시의 숙소 옥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 일찍 그곳에 가보니 산의 정상은 구름으로 가려서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제 모시로 오는 길에 기사 코니가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키는 곳이 있었다.
거기에는 구름 위로 킬리만자로산의 희미한 정상이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가깝게 보였다. 갑자기 중학교 동기인 이경우 친구가 생각났다. 아들의 결혼식이 내일이어서 산의 정상을 바라보면서 신혼부부가 결혼해서 잘 살아가길 염원해 보았다.
우리는 아침 일찍 모시의 숙소를 떠나 킬리만자로 산으로 향했다. 킬리만자로산 입구에서 입산 신고를 한 후 9시 반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우리가 등산할 코스는 해발 1,824m 입구에서 마랑구 루트를 따라 해발 3,000m 만다라 산장까지 가는 것이었다.
산행하는 중에는 날씨가 잔뜩 흐리다가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했다. 등산로가 진흙길이 되어서 매우 미끄러웠다. 우리는 조심조심하면서 등산로를 올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왼쪽 가슴에 작은 통증이 시작됐다. 거기다가 1월 7일 인천공항에서 아디스 아바바행 비행기에서부터 기침을 하기 시작해서 감기약을 먹었더니 등산로 초입부터 좀 몽롱하면서 졸리기 시작했었다. 오늘은 산행을 하기 위한 몸의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등산 가이드가 제공해 준 물통이 무겁게 느껴져서 한모금 마시고는 물을 거의 다 버렸다. 힘들게 올라가다보니 만다라 산장까지 반을 올라왔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우리는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산행하는 우리 15명을 위해 등산 가이드 6명이 함께 했다. 산장에서 먹을 도시락을 지고 가는 사람,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 후미에서 중도 포기하는 사람과 함께 하산할 사람 등이었다.
숙소에서 킬리만자로 정상이 잘 보인다는데 구름에 가리어서 정상을 볼 수 없었다.
등산객은 모두 공원 관리소에서 여권번호와 인적사항을 기록한 후 사인하고 등산해야 한다.
킬리만자로산 등산 안내 표지판
나의 인도로 산행 전 준비운동
킬리만자로산 안내 표지판
등산로 입구
등산로 초입에는 평평하고 좋았는데 폭우로 등산로가 진흙길로 변했다.
등산 가이드와 함께
우리는 나머지 산행을 위해 출발했지만 나의 왼쪽 가슴이 찌를듯이 아프더니 점차 심해졌다. 갈길이 거의 4km나 남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2001년부터 3년간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6회 완주했고 국내의 웬만한 산은 다 올랐다. 그 때도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발과 종아리에 심한 쥐가 내렸다 진흙길에서 신발을 벗고 주물려보려고 했지만 다리 근육이 뻣뻣해져서 마치 말린 명태 같았다. 갈수록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마라톤 풀코스를 여러번 뛴 사람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례가 가끔 있었다. 이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중도에 포기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의 처지가 바로 그 사람들의 상황이었다. 죽음이라는 사고를 감수하면서 해발 3,000m 만다라까지 가서 나의 목표를 달성하느냐, 아니면 약간의 불명예(?)를 안고 안전하게 하산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와 나를 위한 가이드 한 사람이 뒤에 쳐져서 함께 천천히 걸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조급증이 더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졸음과 몽롱함, 그리고 가슴통증이 있어서 30분 이상을 더 가면 죽을 것 같았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우리 여행단에 큰 부담이 되고 동행한 아내에게는 지옥을 선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얼마나 더 거야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텔브이 미니츠! 이 친구가 거짓말 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매우 천천히 걸었다. 심장에 부담이 없도록. 이제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보니 포 미니츠! 조금 더 가니 정말로 만다라 산장이 보였다. 아내가 나를 보더니 입술이 왜 그렇게 새파랗게 변했느냐고 하면서 크게 걱정을 했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말이 생각났다. 사고 없이 목표한 산행을 마칠 수 있어서 함께 한 일행들과 산행 가이드 여러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4.1.13)
해발 3,000m 산행을 마치고 만다라 산장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
만다라 산장
하산길의 질퍽거리는 등산로
등산로 주변은 밀림속 같았다.
하산길에 보이는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올라가는 포터들
질퍽거리는 등산로에 더러워진 등산화를 1달러만 주면 현지인 아주머니들이 깨끗이 닦아 주었다.
밤에는 숙소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새찬 비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육개장을 먹었다.